매일신문

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과거에 급제한 바보

옛날 옛적에 참 고지식하고 어수룩한 아이가 살았어. 어찌나 앞뒤가 꼭 막혔던지, 누가 뭘 시키면 꼭 곧이곧대로 할 줄만 알았지 주변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어.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지.

하루는 이 아이 옷에 벌레 한 마리가 붙었는데, 그걸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놔뒀어. 그랬더니 벌레가 온 데 다 기어다니거든. 그걸 보고 아버지가 한 마디 가르쳐 줬어.

"얘야, 벌레가 옷에 붙으면 손으로 탁 때려서 잡는 법이다.

"

"손으로 탁 때려서 잡으라고요? 잘 알았습니다.

"

아들은 아버지 말을 마음에 잘 새겨 뒀지.

며칠 뒤에 이 아이가 방안에 앉아 있는데, 마침 파리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오더래. 그런데 이놈의 파리가 어디에 가서 앉는고 하니, 하필이면 방바닥에 누워 있는 아버지 등짝에 턱 내려앉네.

'아버지가 그러는데 벌레가 옷에 붙으면 손으로 탁 때려서 잡으라셨지.'

당장 파리가 붙어 있는 곳을 손바닥으로 탁 때렸어. 손자국이 빨갛게 나도록 철썩 후려쳤지. 그래 놓으니, 잠자던 아버지가 기겁을 하고 일어날 것 아니야?

"얘야, 그럴 때는 부채로 설렁설렁 바람을 내어쫓는 법이다.

"

"부채로 바람을 내어쫓으라고요? 잘 알았습니다.

"

아들은 이번에도 그 말을 마음에 잘 새겨 뒀지.

며칠 뒤에 이웃집에 불이 났어.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불을 끈다고 시끌벅적한데, 이 아이가 보니 불 속에 검은 불티가 많이 날아다니거든.

'아버지가 그러는데 저런 건 부채로 설렁설렁 바람을 내어 쫓으라셨지.'

당장 부채를 가져와서 설렁설렁 부쳤어. 말 그대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거지. 그래 놨으니 어떻게 되겠어? 고약한 놈이라고 동네 사람들한테 욕만 먹고 쫓겨났지. 그 꼴을 보고 아버지가 한 마디 가르쳐 줬어.

"얘야, 그럴 때는 물을 길어 와서 끼얹는 법이다.

"

"물을 길어 와서 끼얹으라고요? 잘 알았습니다.

"

아들은 이번에도 그 말을 마음에 잘 새겨 뒀지.

며칠 뒤에 이웃집 옆을 지나다 보니 저녁밥을 짓느라고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거든.

'어라? 저기 불이 났네. 아버지가 그러는데 저럴 땐 물을 길어 와서 끼얹으라셨지.'

당장 물을 한 동이 길어 와서 부엌 아궁이에 대고 끼얹었어. 불 때는 아궁이에다 물을 끼얹어 놨으니 어떻게 되겠어? 주인이 노발대발해서 야단을 하지. 이번에도 욕만 실컷 얻어먹고 쫓겨났어.

그 꼴을 보고 아버지가,

"아이고 얘야. 너처럼 하기도 쉽지 않으니, 그것도 남이 못 따를 재주로구나."

하고서 그 날부터 글을 가르쳤어. 이 아이는 가르쳐 주면 가르쳐 주는 대로 글을 배워서, 나중에는 과거에 급제했단다.

그러니까 아무리 바보짓이라도 좋게 보면 재주가 된다는 거야.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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