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창세기'에는 화와(이브)가 뱀의 꼬임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이 원죄의 시작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릴때 즐겨 보았던 만화영화는 꼭 선이 악을 이기는 내용으로 끝났다.
굳이 만화영화가 아니더라도 권선징악 결말을 갖는 영화는 요즘도 허다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난무하는 테러, 폭력,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면서 정의는 어디로 갔는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면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물리치는 방법은 없을까.
정신분석 전문가인 저자는 악의 근원을 찾기 위해 1년동안 긴 여행을 떠난다.
저자는 일반인뿐 아니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흉악범, 엽기 범죄를 저지른 정신병 환자 등 68명을 직접 만나 면담하면서 사람들이 악을 무엇이라 여기는지를 실증해 내고 있다.
저자는 면담 참여자들에게 '악이 존재합니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당신이 정의하는 악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살면서 악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등 21가지 질문을 던진 후 그들의 다양한 대답을 분석했다.
결과는 일반인들은 패배, 실연, 따돌림, 죽음에서 악을 떠올렸다.
반면 흉악범들은 존속 살해, 강간, 살인 및 사체유기 같은 범죄를 악과 동일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에는 한결같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저자는 악의 실체와 관련된 키워드는 '두려움'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타자에게 부과함으로써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가 악이라고 정의한다.
나아가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깨닫고 포용하는 대신 두려움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려할 때 인간은 사악해진다고 말한다.
◇ 두려움 없애려는 시도가 '악'
저자는 현대 사회의 특질처럼 언급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는 범죄도 두려움이 낳은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아무 원한 관계도 없는 행인을 납치하여 엽기적으로 살해하는 행위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상징화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타자에게 직접 폭력적으로 침입시킴으로써 그것을 배설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악을 낳은 충동이 결코 제거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어떤 이들은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며 행위와 행위자를 분리하여 그에게 사회적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위의 두 관점은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일하다는게 저자의 입장이다.
모두 악을 도덕적 범주로 보고 악을 불러 일으킨 충동을 제거하거나 무시해야 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저자는 "모든 악은 타자에게 두려움을 부과하여 스스로 그것을 회피할 수 있도록 고문의 속성을 지니며 이성으로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이성은 비록 외부세계를 변형시키는 능력을 지녔지만 결국 이러한 변형을 동기화하는 한계, 도덕성, 무의미, 연약함, 상실 등의 두려움 앞에서 무력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악(evil)을 거꾸로 읽으면 삶(live)이 된다.
이는 우리가 악을 경험하지 않고 살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재소자들은 면도날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베기 위해 날을 숨겨 둔다.
이것은 광기와 범죄의 좋은 차이점이다.
광인은 자신을 베지만 범죄자는 타인을 베는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악의 절대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두려움을 깨닫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변형시키는 방식을 발견하도록 구체적 상징을 제공해 주는 소설이나 영화 등의 서사 형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 필요한 건 완충 역할하는'문화상품'
오늘날 대중문화의 한 축을 구성하는 난도질과 피로 가득한 스플래터 무비나 흡혈귀 영화들은 수용자로 하여금 내재된 두려움을 폭력적이고 즉자적인 형태로 해소하도록 하기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이 수용자로 하여금 인간적인 두려움을 포용하고 초극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상징과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문화상품들이 사회 구성원들이 지닌 파괴적 충동을 완화시키는 공간이 됨을 주장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악을 제거 대상으로 보는 사회에서는 최근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유영철' 같은 흉악범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악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악에 굴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파괴적 충동의 완충지대를 제공할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을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