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스펙터클한 영상미가 생명이라면, 연극은 현장성이다.
연기자와 관객의 감정 소통이야말로 다른 장르가 갖지 못한 연극만의 묘미가 아닐까. 어느 지역 연극인은 "무대와 공연장 규모가 크면 클수록 관객과의 대화를 차단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극은 소극장 무대가 제맛이다.
'소극장 가는 달'인 12월이 왔다.
대구 연극계의 한해를 마무리하는 제14회 목련연극제가 지난 3일 막을 올렸다.
올해는 예전, 마루, 고도, 한울림, 이송희 레퍼토리 등 다섯 개 지역 극단의 작품이 예전아트홀과 마루소극장 등 두 곳의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연말의 들뜨는 기분을 따끈따끈한 연극 한 편과 함께하면 어떨까. 목련연극제 공연은 평일 오후 7시30분, 주말 오후 5시·7시30분. 입장료는 일반 8천원, 학생 5천원. 문의 053)606-6334
◇극단 예전 '내 이름은 조센삐'(김태석 작·연출)/~12일/예전아트홀
'내 이름은 조센삐'는 지난 2001년 지역 무대에 올라 호평을 받았던 작품. 일제시대 종군 위안부로 살았던 이 시대 모든 여성들의 아픔을 통해 바로잡아야 할 역사를 알리고 그들의 한을 어루만지는 이야기다.
과거 일본에 이어 최근 중국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사 왜곡 문제를 새삼 일깨우게 해준다.
◇극단 마루 '가시고기'(조창인 작·추지숙 연출)/10~19일/마루소극장
지극하고도 조건없는 사랑을 그린 '가시고기'는 겨울에 어울리는 따뜻한 작품이다.
이미 베스트셀러로 그동안 수많은 연극과 TV드라마로 친숙한 이야기가 됐지만 죽어가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은 언제나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신다.
이번 공연에는 최루성 멜로드라마 드라마로 흐를 것을 우려해 아들에게는 어린이다운 천진난만함을, 아버지에게는 우직하고 고집 센 측면을 부각한 점이 눈길을 끈다.
◇극단 고도 '프라자 호텔'(닐 사이먼 작·이현진 연출)/14~19일/예전아트홀
미국의 대표적 코미디 작가인 닐 사이먼의 작품은 언제나 재미있다.
'프라자 호텔'은 '슬픔을 염두에 두지 않은 웃음이란 없다'는 닐 사이먼의 말처럼 점차 각박해져가는 우리 사회와 가정, 그리고 중년 부부들의 사랑과 갈등을 결코 가볍지 않은 웃음을 통해 고민하게 한다.
호텔에 숙박한 중년 부부들의 웃지 못할 해프닝을 보면서 인생에 있어 결혼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재미가 있다.
원작에는 세 개의 에피소드가 있지만, 이번 공연에는 두 가지만 무대에 오른다.
◇극단 한울림 '오해'(알베르트 카뮈 작·정철원 연출)/21~26일/마루소극장
알베르트 카뮈의 '오해'는 20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죽여버린다는 사실적인 비극인 동시에 부조리극이다.
어찌 보면 난해한 작품일 수도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들의 대사를 독백체로 바꿔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 극을 통해 카뮈의 내면의 색채를 보여주기 위해 음악 및 극 전체의 색채를 회색톤으로 설정한 점도 이번 공연의 특색이다.
◇극단 이송희 레퍼토리 '가을 소나타'(잉그마르 베르히만 작·조양제 연출)/21~26일/예전아트홀
7년간 만나지 못했던 피아니스트 어머니와 목사 부인인 딸이 재회한 뒤 빚어지는 갈등을 그린 '가을 소나타'는 서정적이면서도 진실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 동시에 인물 간의 심리적 흐름과 대결이 주된 기둥이 되고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요구되기 때문에 연기자들이 '기피'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예전아트홀 무대에 오를 이번 공연은 원작에 없는 몇 가지 재미있는 사건들을 추가, 무겁지 않게 만들었다.
다른 연극의 두 배에 달하는 대사를 과감하게 삭제한 것도 이번 공연 연출의 특징.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연출자에게 듣는다
같은 작품이라도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관객들이 느끼는 감동은 천차만별이다.
이번 목련연극제에 참가하는 다섯 명의 연출자들이 관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들어보자.
△'내 이름은 조센삐' 김태석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하지만 역사는 힘 있는 자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
'내 이름은 조센삐'는 일제시대 종군 위안부들의 아픔을 얘기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그분들의 아픔과 한을 조금이나마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가지 더 있다면, 점점 왜곡되고 있는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바람이다.
△'가시고기' 추지숙
'가시고기'는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열심히 알을 보살피는 가시고기 같은 아버지의 마음, 백혈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 아들을 돌보는 그런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싶은 사람, 가족 간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고픈 사람이라면 이 연극을 추천한다.
△'프라자 호텔' 이현진
이 작품을 보면서 분명 웃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웃음이었으면 한다.
그 웃음 뒤에는 생각할 거리가 분명 있기 때문. 극중 중년부부들의 결혼생활 속에 발생하는 해프닝을 보면서 우리가 겪을 결혼생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오해' 정철원
알베르트 카뮈가 '오해'라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비극을 통한 희망이다.
위축된 경기와 각종 사건, 사고 등으로 사회가 메말라가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희망의 빛을 봤으면 한다.
20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죽여버린다는 내용의 이 작품을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분류한 카뮈의 의도가 이것은 아닐까.
△'가을 소나타' 조양제
남자로서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연출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작품도 무거운 편이라 원작에 없는 몇 가지 재미난 사건들을 집어넣어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하도록 노력했다.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보내는 고백은 자기의 고통은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남의 고통과 아픔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는 인간의 나약함이다.
정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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