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생명공학자 황우석,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생물학자로 동물과 곤충의 행동 연구를 통해 생명의 진리를 찾아나선 최재천, 그리고 생동하는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온 한국화가 김병종. 세 사람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1953년생 동갑내기로 각각 부여'강릉'남원이 고향인 '촌놈'이다. 서울대 출신으로 다들 모교에서 후학을 가르친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이들을 강하게 묶는 고리는 바로 '생명'이다. 땅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라 온갖 풀과 꽃과 생명체들과 더불어 성장한 유년의 자연체험을 뿌리로 각자의 영역에서 '생명'이라는 주제에 평생을 바쳐 매달려왔다.
이처럼 강한 끈으로 연결된 세 사람이 모여 한 권의 책을 펴냈다. '나의 생명 이야기'는 과학자 두 사람이 글을 쓰고 한 명의 예술가는 그림으로 예술적 향기를 입혔다. 과학자들의 글이지만 과학이나 철학보다는 어린 시절과 학문적 고민 등을 차분하게 풀어내는 에세이다.
국내 최초로 체세포 복제 소 '영롱이'를 탄생시켰고 인간 줄기 세포 연구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자랑하는 황우석. 그의 연구는 생명복제라는 이유로 과학적'윤리적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렇다면, 황 교수는 과연 생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 집에서 키우던 소의 순한 눈망울, 봄이면 샛노란 솜털이 개나리보다 탐스럽던 병아리, 암탉이 막 낳은 따뜻한 달걀, 그런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던 내 부모 형제와 이웃들…. 산골 마을 출신인 그의 생명론은 소박하고 구체적이다. 논 한 마지기 없이 소에만 기대어 사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소에 대한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고, 모두가 포기했던 인간 줄기 세포 연구에 그토록 매달린 것도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될 무수한 난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황 교수는 머리를 깎을 돈이 없어 두발검사 때 번번이 걸리고 차비가 없어 고향에 가지 못했던 학창 시절, 고질적인 학내 파벌대립으로 교수 임용에서 탈락해 인생의 위기를 겪었던 일 등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또 전셋집을 팔아 실험농장을 마련해 연구에 몰두한 일과 복제연구에 따른 비난 여론으로 짊어져야 했던 고민 등도 털어놓는다.
강원도 강릉에서 왕잠자리와 논병아리를 잡으며 유년기를 보낸 최 교수는 '감자바우' 촌놈이다. 2지망으로 들어간 동물학과에서 방황하던 그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 이는 하루살이 연구를 위해 한국을 찾은 미국 유타 대학의 에드먼즈 교수였다. 이 책에는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가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하버드 대학 윌슨 교수와 그 분야 저명한 교수들을 만나며 세계적인 동물학자로 입지를 다져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저자들에게 생명은 자연이고 인간이다. 과학 탐구는 자연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며 자연에는 끊임없이 퍼올려도 영원히 마르지 않을 지혜의 샘들이 무수히 많다. 황 교수는 말한다. "과학도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과학책을 보고 실험을 하기 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숲과 나무와 그 숲에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벗이 되라. 과학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사진: 생명공학자 황우석(가운데)와 사회생물학자 최재천(왼쪽), 한국화가 김병종 등 세 사람이 '생명'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을 엮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
李대통령 "위안부 합의 뒤집으면 안 돼…일본 매우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