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겨울연가의 어법

드라마 '겨울연가'의 일본 방영으로 비롯된 한류열풍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배용준과 최지우는 일본 최고의 스타가 되고 이들이 드라마를 촬영했던 장소들은 어김없이 관광명소가 되었다.

남이섬에는 밀려드는 일본 관광객들을 위해 두 사람의 동상까지 세워질 예정이라고 하니 한류열풍의 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여파로 한일 간의 항공 노선이 연일 만석을 이루고 한국의 호텔업체들이 내수 부진 속에서 뜻하지 않은 호황을 이루게 되었으니 우리로서 싫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호들갑스럽기까지 한 이 현상에 조금은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겨울연가'의 일본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몰입되는 이유를 일본에서는 이미 사라진 사랑의 유형이 한국에는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의 전근대적인 유형에서 자신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그리워한다는 진술인데 사실 사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순수함, 혹은 순결함 그 자체의 서사일 것이다.

얼핏 호들갑스러워 보이는 '겨울연가'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에서 나는 잠시 지나간 우리 현대사를 생각해 보곤 한다.

지난 70년대와 80년대 우리 역사는 전세계의 역사 속에서 가장 핍진하면서도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냈다.

박정희와 5공, 6공으로 이루어지는 독재정치의 흐름 속에서 나라 안의 모든 한국인들은 보다 나은 세상, 보다 자유롭고 빛나는 세상에 대한 꿈을 키우고 그 꿈을 위해 자신의 청춘과 명예를 걸고 싸워온 것이 사실이다.

일본이 경제적인 성공과 호황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반도 안의 남쪽 사람들은 자유와 진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위해 투쟁하고 있었으며 이 가치는 어떤 경제적인 성공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문학판만 해도 그렇다.

백만 권 이상씩 팔리는 시집들이 나라 안에서 이루어졌으니 이는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의 반영인 것이다.

김정한, 박경리, 박완서, 이청준, 황석영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신경숙, 공지영과 같은 젊은 소설가들의 소설이 끊임없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는 전적으로 한국인들이 지닌 미적 탐구력의 한 소산이다.

그 시대의 아름다운 자화상의 하나인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같은 작품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낸 시간의 흔적을 잠시 자랑스레 매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힘들고 아름다웠던 시간의 궤적을 나는 '겨울연가'에서 읽거니와 일본인들의 열정적인 반응 또한 그 연결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경제대국 일본이 '겨울연가'를 대하는 방책을 퍽 부럽게 바라보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지난 십 년 이상 극심한 불황에 시달려왔다.

그 불황의 뒤끝에서 '겨울연가'라는 밋밋한 불씨 하나를 발견하고 이를 최대의 경제상품으로 포장해 내는 것이다.

비디오와 음악뿐 아니라 의류, 디자인, 여행, 완구, 도서,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일본 언론은 앞장서서 한류의 바람을 일궈내고 이를 상품의 소비와 연결한다.

언론이 국가경제의 진작에 최선봉에 서는 것이니 이는 우리 언론에서는 찾기 힘든 유형이다.

기왕에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대우해 왔는가를 생각하면 일본 언론의 이러한 변환은 놀랍고 끔찍하기까지 하다.

12월 24일 NHK는 배용준과 최지우의 동상 개막식을 생중계한다고 한다.

그들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곽재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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