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칼럼-웰빙의 진정한 의미

2004년 한해는 '웰빙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웰빙에 관련된 각종 산업이 생겨나고 웰빙을 논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하였다. 웰빙의 사전적 의미는 안녕, 행복, 복리 등이며, 이것은 건강과 관련이 있는 용어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에 대한 정의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인 안녕(well-being)'이라고 표현하였다.

웰빙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02년 말부터이다. 한 외국계 여성 잡지에서 '웰빙족'의 생활 방식을 소개함으로써 국내에 확산되었다. 이 말은 원래 미국에서 반전운동과 민권운동 정신을 계승한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이 고도화된 첨단문명에 대항해 자연주의, 뉴에이지 문화 등을 받아들이면서 파생된 삶의 방식에서 유래하였다. 사실은 서양의 물질주의적 생활에서 동양의 정신적인 사고가 가미된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웰빙의 단어를 접하면 요가, 유기농 식품, 아로마테라피, 스파 등을 떠올리게 된다. 평소의 생활 방식을 내버리고 어느 날 갑자기 유기농 식품을 먹고 아로마테라피를 받고 요가와 스파를 한다고 해서 과연 웰빙의 삶을 사는 것일까?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행동에는 항상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요즘 웰빙을 가장한 많은 상업적 상품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상품들을 이용해야만 웰빙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규칙적인 생활, 고른 영양 섭취, 충분한 휴식과 숙면, 적당한 운동 등을 통해서 편하고 즐거운 마음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웰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계에도 어김없이 웰빙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과거에는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병을 치유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으나, 오늘날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더욱 건강을 유지하고 좀 더 젊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클리닉을 방문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소극적, 수동적 입장에서 적극적, 능동적 입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바람직한 것은 사실이나 자칫 지나치게 건강염려화 현상이 생길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가져본다.

며칠 전에는 50대 초반의 건장해 보이는 남자가 속이 불편하고 계속 헛배가 부른 것 같다며 진료실을 찾아왔다. 그동안 여러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했으나 "아무 이상이 없으며 신경성이니 신경을 쓰지 말라"라는 말만 들었고 뚜렷한 처방이 없고 증상도 좋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남자는 2년 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건강을 위해서 생식을 해보라는 말을 듣고 줄곧 생식을 해왔으며 퇴근 후에는 그동안 친구나 직장 동료와 어울리던 회식자리에도 전혀 참석하지 않고 절제된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이 남자는 건강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인해 생긴 건강염려증 증상으로 위장장애를 호소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웰빙 시대에 따른 또 다른 현상인 것으로 보여진다. 진정한 의미의 웰빙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묻어나는 자연적인 생활방식 가운데에 심신이 평안하고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일 것이다.

김희철(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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