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아름다운 손

시간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해 빨라진다더니 참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새해라고 떠들썩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끝나간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엔 끄트머리 몇 날만 남아있다.

이맘때면 누구나 마음이 조금은 쓸쓸해진다. 마주치는 이들의 얼굴에서도 잎을 다 떨군 나무처럼 쓸쓸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눈빛들도 한결 착해보인다. 자신보다 더 주머니가 가벼운 누군가와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밑바닥을 기는 경기 탓에 40년 만에 새 디자인으로 등장한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도 올해 극심한 불황(?)을 타고 있다 한다. 24일이 돼봐야 알겠지만 아직까진 무척이나 가벼운 모양이다. 지난 1984년 한 차례 주춤했을 뿐 72년 이래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는 자선냄비인데….

거기에 남몰래 소복소복 담기는 사랑의 이야기들은 냉랭한 우리네 마음을 녹여준다. 상당한 거액을 넣고 말없이 사라지는 얼굴 없는 천사들은 아름다운 나눔의 모습으로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래서 자선냄비 시즌이면 이번엔 어떤 미담이 나올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어김없이 익명의 천사들이 나타나고 있나보다. 부산의 한 자선냄비엔 50대 남자가 2천만 원짜리 수표를 집어넣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한다. 구세군 관계자는 그 남자가 수표가 든 봉투를 1천 원짜리 몇 장에 싸서 넣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금액이 든 줄 몰랐다고 했다. 봉투엔 또 뉴스에 공개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글귀가 쓰여져 있다 한다.

미국에서도 20년간 이어지는 익명의 금화(金貨) 선행이 화제라 한다. 지난 82년 시카고의 구세군 자선냄비에 누군가가 금화 한 개를 넣고 간 뒤 여러 주의 자선냄비에 감쪽같이 금화를 넣고 사라지는 선행이 매년 이어져 왔다는 것. 사람들은 올해도 익명의 금화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데 그 소망대로 이미 몇몇 주에서 금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다. 금화를 지폐로 싸서 넣는 바람에 이 신비스런 선행의 주인공들이 누군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12월의 종소리는 오늘도 우리 귓가에 와닿는다.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라는 이해인의 시('12월의 기도') 구절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손들에게, 아직 며칠이나 남은 이 한 해에 감사하고픈 마음이다.

전경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