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후 봇물을 이루고 있는 대구 도시개발은 달동네 이웃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절규한다. 국내에서 진행 중이거나 논의되고 있는 대책과 우리보다 앞서 달동네 이웃들의 '고통'을 해결하고 있는 선진국 사례를 살폈다.
◇'소셜 믹스'(social mix)
달동네를 개발할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세민들의 '보금자리' 상실이다.
영세민들이 바라는 가장 큰 희망은 재개발을 피할 수 없다면 대안으로 집값이 싼 소형 임대아파트라도 지어달라는 것.
실제 대구 동구의 한 아파트 임대 주민과 일반 분양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한지붕 아래 딴살림을 차리고 있다. 발단은 '도시가스 배관공사'. 임대 주민들이 난방을 위한 도시가스 배관 공사를 하려 했지만 일반 단지 주민들은 배관이 통과하는 자리가 자신들의 사유지라며 도로 굴착을 반대했던 것. 결국, 배관은 일반 주민 단지를 한참 둘러 설치됐고, 비용만 추가로 늘어나게 됐다. 최근에는 아예 펜스로 경계까지 짓고 있다.
집값이 떨어진다며 가난한 사람들과 섞여 살기 싫어하고, 이웃에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조차 반대하는 게 현실이다. 일반 단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임대 단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해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례도 분명 있다.
도시 전문가들은 임대 아파트와 일반 아파트의 '소셜 믹스(더불어 살기)'를 위한 정책과 사회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 경우 이 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임대 아파트를 별도로 배치하지 않는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 개정안'을 의원 발의로 상정, 지난달 통과시켰다.
시 관계자는 "임대와 일반 아파트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지 못한다면 임대 아파트 분양 수를 늘리는 일 또한 요원하다"며 "소셜 믹스를 계속 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서울 은평 뉴타운 경우 국내 처음으로 아파트 분양에 소셜 믹스 개념을 도입했다.
총 4천491가구를 분양하는 은평뉴타운은 일반(2750가구)과 임대(1471가구) 비율을 6대 4로 상향 조정했고, 같은 동에 일반과 임대를 동시에 분양하는 아파트를 상당수 배치한 것.
◇순환임대아파트
재개발 지역의 영세민들을 위한 전용 주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1990년대 중반 서울 관악구 신림 1단지에는 국내 최초의 '순환임대아파트'가 들어섰다.
이 순환임대아파트는 2000년 신림 2단지 재개발 사업을 염두에 두고, 이 사업으로 갈 곳 없는 세입자들과 집주인들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계획됐다. 현재 신림 1단지 내에는 2단지 재개발 사업으로 갈 곳 없는 500가구가 이주해 살고 있다.
올 초 재개발 사업에 돌입한 신림7동 원주민 500가구는 지난 2000년 건립한 삼성산 순환임대아파트에 입주했고, 신림 7동 자리에도 향후 재개발 사업 지역의 또 다른 원주민들이 머무를 수 있는 같은 아파트가 추가 건설됐다.
재개발 지역 대다수의 임대 아파트는 보증금 3천만~4천만 원에 임대기간도 5년에 불과하다. 반면 순환임대아파트는 임대기간이 50년이나 되고 보증금 또한 1천만 원 안팎이어서 재개발 지역 원주민들의 이주 공간으로 점차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 이호 책임연구원은 "순환임대아파트는 재개발 사업 수요가 충분하고, 광역시 차원에서 가능한 장기 사업"이라며 "해당 지자체가 광역지구계획을 수립해 구단위 재개발사업들을 종합 검토, 영세민 수요를 파악한 뒤 순환 임대아파트 연계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스템도 바꾸자
도시 전문가들은 재개발 지역의 원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근본 대책으로 기존의 도시 개발 방식에 일대 전환을 요구했다.
대구과학대 부동산학과 윤종섭 교수는 "우리나라의 재개발 방식은 '싹 걷어내 다시 채우는' 전면 재개발"이라며 "공공시설, 주차장, 상하수도 등 기존시설 정비만으로 지구를 충분히 보존할 수 있다면 굳이 불필요한 돈까지 써가며 전면 재개발을 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조득환 연구위원은 "주거환경개선사업 등 도시 재개발 사업 경우 엉성한 계획이나 민원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 '로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며 "도시 전체의 틀을 보고 계획에 따라 장기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또 주민 의사 반영도 문제. 주민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 재개발을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올 6월 인천 향촌지구와 광주 양림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두 지역 원주민 중 주거환경개선사업 때 주민의견을 잘 반영했다는 의견은 16.3%에 머물러 79.3%가 잘 반영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집주인, 세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응답도 72.1%나 나왔다.
연구소 관계자는"공청회를 거치지 않고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실시하기 전 동네 유지들끼리 모여 일방적으로 대표자회의를 구성하는 것도 문제"라며 "개발 주체의 하나인 세입자들에게 대표자회의 참여자격을 부여하는 방안도 충분히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선진국은
일본 경우 1970년대부터 도시 재개발 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지금의 우리처럼 '고통'도 컸다. 하지만, 사업 30년이 지난 지금 시행착오를 통해 다양한 성공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의 주거환경개선사업 경우 우선 사업 방식이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과밀주택갱신사업, 거주환경정비사업, 밀집주택시가지정비촉진사업, 가로환경정비사업 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사업 주체가 주택 시가지의 환경을 고려해 거기에 맞는 사업메뉴를 선택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같은 지구에 2개 이상의 사업을 중복 시행, 사업 효과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개발 요인을 정확히 파악해 각각에 맞는 사업에 수용하기 위한 것.
또 각 지자체는 기반 시설, 주택 수준, 주민 의견 등 지역의 현황을 일정 기준에 따라 정기 조사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사업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중요 자료로 쓰고 있다.
다음으론 반드시 주민 참여를 통해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
사업 계획안을 주민이 참여해 같이 만들고, 일부 사업 경우 주민이 주체가 돼 추진하기도 한다. 장기 사업 경우 추진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적극 수렴해 계획안을 수정하는 단계까지 밟고 있다. 또 주민을 위한 행정 및 기술 지원과 함께 주민들의 의견을 종합해 낼 전문가 파견까지 하고 있다. 사업 주체 간의 빠른 의사 결정과 효율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행정, 주민, 전문가로 구성되는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는 것.
재정착을 위한 주민 배려도 기본이다. 노후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커뮤니티주택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재개발 관련 사업 대상 주민들은 저렴한 임대료를 지급하고 신축주택에 입주할 때까지 거주할 수 있다. 사업이 모두 완료된 후 커뮤니티주택은 일반인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일본의 일부 지자체는 도시 재개발 사업 후 주거비가 상승할 경우 주민들에게 기존 주거비와 상승 주거비의 차액을 상당부분 보조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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