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벼랑 끝' 대리운전자들

보험료 자부담·시원찮은 수입·퇴출 위험

"이게 마지막 일자리인데···."

전업 대리운전 기사들의 겨울은 매섭기만 하다. 어렵게 얻은 직장이지만 사무실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거리다. 대부분 개별 사업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산재,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해 사고가 나더라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게다가 불황으로 벌이는 갈수록 시원찮다.

최근에는 낮에는 직장에 다니며 야간에 대리운전을 하는 소위 '투잡스' 족에 맞벌이 부부까지 뛰어들었다. 게다가 요즘엔 용돈을 벌어보려는 아르바이트생까지 마구잡이로 대리운전에 나서면서 정작 생계를 책임진 대리운전 기사들은 '조기퇴출' 위협까지 받고 있다.

지난 9월 대리운전을 시작한 김모(41·대구 서구 비산동)씨의 출근 시간은 오후 6시. 손에 든 PDA를 켜고, 대리운전 업체로부터 '콜(손님 호출)' 받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쉬는 날도 없이 새벽 2, 3시까지 대구 전역을 뛰어다니지만 하루 3만 원을 벌기 힘들다. 요즘은 경기불황까지 겹치면서 하루 평균 4, 5건에 그쳐 연말연시 분위기도 없다. 술을 자제하는데다 두서너 명씩 합승하는 자가운전자들이 늘다 보니 일거리도 줄었다. 뛰는 만큼 번다는 업계의 생리도 이젠 옛말이 됐음을 실감하고 있다.

전업으로 대리운전 업계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막장 인생들. 한 대리운전 업체 관계자는 "별다른 자격요건이 필요치 않다 보니 다른 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대리운전에 뛰어든다"며 "신용불량자이거나, 빚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등 사회적 약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했다.

이들이 대리운전료로 받는 돈은 대개 8천 원. 운전자와 회사가 8대2로 나눠 가진다. 하지만, 택시비 등을 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4천 원 정도.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개의 대리운전을 불러놓고 제일 빨리 오는 사람의 차를 타고 가버리는 풍조 때문에 조금만 늦어도 손님을 빼앗기기 일쑤.

최모(37·대구 북구 고성동)씨는 "며칠 전 콜을 받자마자 택시를 타고 달려갔으나 손님이 먼저 온 차를 타고 가는 바람에 택시비만 날렸다"고 했다.

인심도 각박해졌다. 이모(39·대구 중구 남산동)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던 손님들이 있어 택시비는 벌었으나 요즘엔 거스름돈을 챙겨주지 않으면 막말을 한다"고 했다.

또 대리운전 상황실에서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갈 경우 되돌아오느라 손해를 볼 때도 있다. 이모(45)씨는 "두서너 시간씩 손님을 기다리기도 한다"며 "때로는 2천, 3천원을 주면 손님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소위 '커버차'를 이용한다"고 했다.

면허증만 있으면 가능하던 대리운전도 이젠 옛말이 됐다. 대리운전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는 곳이 많아져 대리운전자가 40만, 50만 원 드는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또 손님 정보를 받기 위해서는 50만 원이 넘는 PDA를 구입해야하고, 프로그램 수신료로 업체에 매달 1만5천 원 정도를 내야한다.

근무여건은 더욱 열악하다. 밤새 차가운 바람을 맞지만 쉴 곳은 없다. 최씨는 "콜을 받을 때까지 인근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운다"고 했다.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기사들은 직원으로 고용하는 일부 업체의 경우 선급형식으로 보험에 가입시켜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보험 등의 부담을 덜기 위해 고용관계를 맺지 않고 콜센터 기능만 해주는 업체가 많다"며 "회사는 수수료를 받아 운영하고 기사들은 개별 사업장이 된다"고 했다.

대리운전업이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만 신청하면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영세업체들이 난립해 있다는 것도 문제다. 한 업체 관계자는 "교통사고에 대비한 보험 가입 의무가 없다 보니 보험에 가입을 하지 않거나, 일부만 가입해 두고 사고가 날 경우 변칙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사진:대리운전기사들은 하루하루가 고달프지만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는 마음에 새벽까지 뛰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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