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의 외국인-(1)외국인 노동자 공동체

국가별 모임 활발…매달 수백명 '단합대회'

1991년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대구·경북에 온 외국인 노동자의 역사는 올해로 꼭 15년째를 맞았다. 또 지난 15년간 지역민과 함께 호흡해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느덧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얼마나 되나

대구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구·경북 외국인 노동자는 2만4천710명. 산업연수생 경우 1년 미만의 연수생들이 1만559명으로 가장 많고, 1년 이상 3년 미만의 노동자들도 9천482명에 이른다.

2005년 8월까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3년 이상 5년 미만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4천493명에 달하고 있다.

또 지난해 8월부터 산업연수생제와 병행한 고용허가제에 따라 제조, 음식, 청소, 간병가사, 건설업 등에 걸쳐 176명의 외국인 9노동자들이 대구 경북에 왔다.

전문가들은 5년 이상 장기 불법체류자들도 7천~8천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출신 국가별로는 중국(조선족 포함),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스리랑카 5개국 출신이 전체의 90%를 웃돌고 있고, 나머지는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왔다.

◇외국인 노동자 모임

아부파마(32)씨. 대구에 국내 최대의 스리랑카 노동자 커뮤니티를 만든 사람이다.

10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대구에 와 지금은 소규모 무역업을 하고 있다. 그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늘어나자 1990년대 후반부터 스리랑카 공동체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우선 매년 4월 대구 대명동 계명대 캠퍼스에서 대규모 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추석에 해당하는 스리랑카 최대 명절에 맞춰 마련한 자리다. 농구, 축구, 배구 등 각종 스포츠 경기를 열고, 스리랑카 민속 노래와 전통 춤으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해 타향살이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아부파마씨는 "행사 땐 200여 명의 대구 회원뿐만 아니라 경북, 부산, 경기도 안산 등 국내 곳곳에서 1천500여 명의 스리랑카 근로자들이 집결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 땐 스리랑카 회원들을 중심으로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등 대구·경북에 근무하는 1천20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도 초청해 계명대 대강당에서 성탄 축제를 열기도 했다.

또 중국,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베트남 외국인 노동자들도 각기 크고 작은 공동체를 결성해 매달 한 차례 모임을 열고 있다. 보통 100여 명에서 많게는 300명 이상이 모인다.

이들 모임의 가장 큰 목적은 동료 근로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하거나 불법체류 단속에 걸렸을 때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 실제 지난 14일 대구 동성로 앞에서 만난 압둘러(34·스리랑카)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곧장 수성구의 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산업 재해로 손가락 하나를 못 쓰는 그는 동료 노동자들이 재해를 당할 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가 상담 활동을 전담하고 있다.

베트남 모임 경우 지난해부터 음식 바자회를 열고 있다. '아시아 음식 페스티벌'이라는 주제로 스리랑카, 중국 등 동남아 음식 30종류를 선보였고, 시민들을 상대로 직접 판매도 했다.

필리핀 공동체 말루(42·여) 회장은 "필리핀 노동자들은 매주 일요일 대구 중구의 이주노동자인권문화센터에서 정기 모임을 열고 있다"며 "낯선 이국땅에서는 함께 모이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인들은 종교 공동체를 결성해 정기 기도회를 갖고 있다.

북부정류장 인근에서 파키스탄 식당을 운영하는 소헤일 안줌(30)씨는 "이달 말 대구 죽전동 이슬람사원에서 열리는 기도회에는 500여 명 이상의 무슬림이 참가한다"고 말했다. 이슬람사원은 90년 말에 문을 열었으며 대구·경북에선 유일하다.

안경 무역업을 하는 파키스탄인 아밀(34)씨는 "두 달 전 기도회에는 지금까지 연 기도회 중 가장 많은 1천여 명이 모였다"며 "섬유, 기계, 중고자동차 등 소규모 무역업자에서부터 식당,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들과 산업 현장에 근무하는 노동자 등 각양각색의 구성원들이 종교를 매개체로 하나가 된다"고 전했다.

◇전용 식당, 식품점

외국인 노동자 공동체가 점차 커지면서 성서공단 등 대구 주요 공단에는 이들을 위한 전용 식당과 식품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북부정류장 맞은편 한 베트남 식당. 지난해 8월 개업해 포켓볼 당구대와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휴게실을 설치했고, 베트남 생필품을 판매하는 소규모 상점도 겸하고 있다.

2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대구에 온 웬공정(29)씨는 "퍼보(쇠고기 쌀국수), 차넴(만두), 트롱번농(오리알) 등 다양한 베트남 요리를 즐길 수 있다"며 "공장기숙사를 제외하면 마땅히 모일 곳이 없었는데 새로운 휴식 공간이 생겨 너무 좋다"고 말했다.

박용하(37) 사장은 "북부정류장은 인근에 염색공단이 위치해 있고 구미, 왜관 등 경북의 산업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요지라 파키스탄, 중국 음식점 등이 이 일대에 밀집해 있다"고 말했다.

북부정류장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자 10여 개의 식품점들이 타원형 거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각종 향신료, 야자열매, 통조림 등 동남아시아 곳곳의 다양한 식음료들이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부근 식품점 중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는 ㅇ마트 이재용(45) 사장은 "최근 2년간 이 일대에서만 10여 개의 식품점이 한꺼번에 들어섰다"며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파키스탄 근로자들이 주고객으로 보통 주말을 이용해 60~70명이 일주일치 분량을 사 간다"고 했다.

식품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 중 하나는 휴대전화와 전화카드. 일반 제품과 똑같은 기종이지만 외국인 노동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선불용 휴대전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우리나라 돈으로 1만~1만5천 원 상당의 국제전화카드도 나라별로 50가지가 넘었다.

최근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단연 중국 식당과 식품점이다. 지난 한 해 북부정류장 3곳, 인근 팔달시장 2곳에 중국식 '연쇄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2002년 신강꼬지 전문점을 연 조선족 박은희(34·여) 사장은 "지난 추석 때 가게 바로 옆에 식품점이 개업해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며 "하지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져 전반적 경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전했다.

성서공단에도 외국인 근로자 전문 음식점과 식품점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구마르(39·스리랑카)씨 경우 스리랑카 전문 음식점을 준비 중이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섞어 볶은 프라이드 라이스와 술안주용 대월 등이 주요 요리. 2월 오픈에 앞서 벌써부터 외국인 근로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구마르씨는 "주말이면 왜관, 경산, 칠곡, 구미 등 경북 근로자들까지 모인다"며 "공장 기숙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새로운 만남의 장소를 원하는 이상 앞으로도 이들을 위한 전문 음식점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성서공단에는 지난 한 해에만 3곳의 중국, 인도네시아 전문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식품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10여 개의 상점이 밀집한 이 일대엔 지난해부터 도매업체까지 생겨나 일반 슈퍼에도 외국인 근로자들을 겨냥한 전문 식품을 납품하고 있다.

ㅇ마트 관계자는 "그러나 식품점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벌써부터 제 살 깎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불법체류단속에 경기 불황까지 겹쳐 대부분의 상점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회탐사팀=이종규기자 jong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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