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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허구(虛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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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동화작가 구리 료헤이(栗良平)가 십수 년 전에 쓴 '우동 한 그릇'이라는 수필이 있다. 대형 교통사고를 내고 숨진 운전사의 미망인이 빡빡한 삶 속에 두 아들을 키우면서 일년에 딱 한번 섣달 그믐날 저녁 외식을 한다. 설 치레다. 수입 가운데 한 달에 5만엔씩 사고 피해보상금을 물어야 하는 세 모자. 그래서 첫 해에는 우동 한 그릇을 시켜 셋이서 나누어 먹고 이듬해에는 두 그릇으로 그 다음해에는 세 그릇…. 한편 우동 집 주인은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 몰래 두 그릇에 삼 인분을 담아준다. 넘치는 인정미.

○…14년 뒤 큰 아들은 의사, 작은 아들은 은행원이 되어 이 우동 집을 찾는 것으로 수필은 끝나지만 당시 일본 사회가 풍요로운 사회를 이루는 과정을 배경에 깔고 있어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한 신문기자는 수필 속의 우동 집을 찾아갔지만 그러나 그 이야기는 허구였다. 독자들은 공연한 배신감에 또 한번 허덕였다.

○…현대인들은 이처럼 허구에 감동하기 일쑤다. 왜일까. 아마도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것이 행복의 최대 조건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우동 한 그릇'과 같은 글들이 곧잘 대신해 준다. '허구'라는 단편소설집을 낸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도 "현실이 허구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허구가 현실을 지배한다"고 했을 정도니.

○…어저께 시사회를 가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곧 상영을 앞두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다. 오래 전부터 화제를 몰고 왔는데 시사회를 며칠 지낸 오늘까지 야단이니 분명 화제작답다. 과거사를 일방 왜곡한다느니 진실여부는 관객 몫이니 논쟁도 치열하다. 여기서도 감독은 "이것은 허구"라고 말한다.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에는 중간중간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다큐멘터리 영상까지 동원돼 단순히 픽션이 아님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시사회 때 보안검색까지 한 걸 보면 지나치게 주목받으려는 '허구'가 아닌가 하는 인상도 풍긴다. 가뜩이나 과거사에 너무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들이 많은 시점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진정한 '허구'의 맛을 볼 수 있을까. 배신감에 허덕이더라도 '우동 한 그릇' 같은 허구 말이다. 갈증이 난다.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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