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기의 천년고도 慶州-(2)새로운 족쇄와 무너지는 경제

경주시민들은 천년의 문화유산과 함께 숨쉬며 '잘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부는 시민들에게 또다시 고통의 반세기를 살라고 한다. 최근에는 지역 경제도 무너지고, 그 많던 관광객도 발길을 돌려 억눌린 심정은 더욱 참담해지고 있다.

◇또 다른 족쇄, 고도보존특별법

오는 3월 5일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시민들은 특별법 시행 반대 총궐기를 준비하는 등 기약없는 '결전'을 치르려 한다.

1년 전 지난 40년 동안 문화재보호법의 고통을 참고 살아온 시민들이 시가지 정비와 유적 보존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제안했던 특별법이 입법 과정에서 시민들의 뜻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부에 개정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특별법은 당초 법안대로 시행될 예정이다.

경주 경실련 송성수 영세민대책위원장은 "'보존'과 '정비'를 바랐던 특별법에 정비는 온데간데없고 '보존'만 강화됐다. 정부는 문화재보호법에 이어 특별법이라는 또 다른 족쇄를 경주에 채워버렸다"며 "법이 시행되면 정부는 고도 보존에만 신경 쓰지 시민들의 사유재산권 보호는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고 분개했다.

고도보존특별법은 경주의 역사적 문화환경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제정됐다.

특별법에 따르면 3월 5일 시행 이후 문화재청 주관 기초조사를 거쳐 고도 지정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에 대해 국무총리 산하 고도보존심의위원회에서 고도로 지정한다. 지정 지구는 고도의 역사적 문화환경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는 특별보존지구와 특별보존지구 주변 중 역사적 문화환경을 유지·보존할 필요가 있는 지구로 나뉜다.

각 지구에 대해선 시장과 도지사가 협의해 보존 계획을 세운 뒤 문화부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특별보존지구로 지정되면 문화재보호구역처럼 건축물 등의 신·개·증축 및 용도변경, 토지 형질변경, 도로의 신설·확장·포장 등 일체의 행위를 할 수 없다. 행위 사유 발생시에도 문화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역사문화환경지구로 지정돼도 시장의 허가를 받아야 사유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경주시 등에 따르면 특별보존지구 경우 문화재보호구역(시내면적의 9.1%, 1천67만 평)대부분이 지정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역사문화환경지구도 문화재보호법상 행위 규제 지역(문화보호구역 경계에서 500m 이내) 상당수가 포함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특법법에 의해 지구 지정을 받지 않은 지역이라도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규제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행위 사유 발생시 한 번 받을 허가를 두 번 받아야 한다는 것. 시민들은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라고 했다.

보존 계획에 따라 소요되는 비용도 정부 예산 범위 내에서 부담한다는 임의 규정을 둬 국가의 사업 추진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것. 경주와 같은 국제관광도시인 제주도 경우 2001년 제정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자체가 개발사업에 필요한 자금 요청시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둔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또 고도보존심의위가 중앙정부 직속기관이어서 지자체의 의견이 얼마나 충실히 반영될지 의문스럽고, 문화재 발굴비도 일반 건설행위(대지 150평, 건축 80평 이상) 및 지표조사는 주민이 자부담한다는 문화재보호법의 적용을 받게 한 것도 특별법의 취지와 동떨어진다는 것.

김성수 경주시가지발전연구소장은 "특별법은 경주의 균형 발전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처사"라며 "시민들에게 살 권리를 주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등 정부의 특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무너지는 경제

2004년 경주 통계연보에 따르면 경주 경제의 핵은 도소매 유통 및 숙박, 음식점업. 바로 관광산업이다. 사업체 수만 1만708개로 전체의 54.3%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유통, 숙박, 음식업은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경주 상권의 중심인 경주역 일대 경우 16개 상가 2천여 점포 중 70%가 폐업했거나 폐업 예정이다. 2천만 원 수준의 상가 보증금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지만 빈 점포는 거의 세가 나가지 않는 실정이다.

경주 상가 발전협의회 박병수 회장은 "상권 전체가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숙박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시내 여관들부터 무너지고 있다. 경주경제살리기시민연합 권대원 대표는 "하루 종일 손님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다. 전멸 직전이다"라고 했다.

관광지 주변 숙박업소들도 생사 기로에 섰다. 수학여행 1번지였던 '불국사'는 옛 명성을 잃은 지 오래. 숙박업체 대표 30여 명은 지난 달 속리산에서 열린 정부 규탄 대회에 참가했다.

대한숙박업협회중앙회 최병창 경주지부장은 "정부가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초·중·고교생 1인당 17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단체여행객이 급감했다"고 말했다.

식당가 또한 된서리를 맞고 있다. 24일 보문관광단지. 점심시간임에도 관광객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ㅎ식당 김현희(33) 사장은 "대구∼포항 고속도로 개통으로 사정은 더 악화되고 있다. 포항의 횟집들이 호황을 누리면서 울산, 부산 손님까지 경주를 지나쳐버린다"며 "이 같은 불경기는 평생 처음"이라고 했다.

◇오지 않는 관광객, 떠나는 시민

시민들은 정부의 문화재 발굴 외면, 이에 따른 관광객 감소에 관광정책 부재까지 겹쳐 경주 경제의 핵, '관광'이 침몰하고 있다고 했다.

1997년 876만 명에 달했던 경주 관광객은 2001년 674만 명, 2002년 686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경북관광개발공사 관계자는 "98년, 2000년, 2003년 경우 관광객이 늘었지만 이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최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행사에만 참가하고 바로 경주를 떠나는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970,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경제 성장에만 매달려 문화재 발굴 예산 편성을 외면해 왔다.

경주시에 따르면 정부가 1971년부터 2001년까지 30년간 사들인 문화재보호구역내 토지는 단 3.7%(39만6천 평)에 불과하다.

황오동 주민 이홍씨는 "이 때문에 새로운 관광자원을 전혀 개발하지 못했다"며 "수십 년간 똑같은 레퍼토리만 반복되는데 당연히 관광객이 줄지 않겠느냐"고 했다.

정부는 2002년부터 뒤늦게 '신라문화권유적사업'을 실시, 토지 매입에 들어갔지만 전체 사업 면적이 시내 12개 지구 53만6천 평(5.0%)에 머물고 있다.

대릉원 주변 쪽샘지구. 토지 매입 뒤 빈집들이 대책없이 도심 흉물로 장기간 방치되고 있었다. 한 70대 노인은 "이런 지저분한 곳에 어떤 관광객이 오겠냐"고 했다.

옷가게 주인 이재은(45·여)씨는 "관광객이 수백만을 헤아린다는데 1년 내내 엔화, 달러 한 번 구경 못한 상인들이 부지기수"라고 분개했다.

관광 전문가들도 "유적 한 번 둘러보고 바로 경주를 뜨는 외국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라며 "관광객들이 스쳐가는데 그치는 단순 관광 프로그램이 더 큰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생계 기반을 잃은 도·소매 상가, 식당, 숙박업계 종사자들은 결국 경주를 떠나고 있다. 현재 경주 인구는 28만2천955명. 1999년 29만2천480명에서 해마다 내리막길이다.

황남동의 박철(68)씨는 "50년대만 해도 50, 60만을 넘나들었던 경주 인구였다"며 "지금은 주소만 경주에 두고 있을 뿐 실제는 타지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이 많아 유동인구가 20만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자조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경주·박정출기자

사진설명 : 정책 소외에 이어 경주경제도 무너지고, 생계기반을 찾아 경주를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사진은 손님이 뚝 끊긴 시내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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