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영덕, 울진의 지자체 또는 일부 주민들이 유치를 선언했지만 그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향후 방폐장 유치를 둘러싸고 민-관 또는 민-민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2003년 최악의 폭력사태를 빚은 부안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끝없는 갈등
울진은 과거 방폐장 이야기만 나올때마다 민-관, 민-민 갈등을 빚었다.
방폐장 유치를 추진하는 시민단체(울진발전포럼)와 울진군청은 지난해 8월 충돌했다. 울진발전포럼이 울진군청에서 2주일간 천막 농성을 벌이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군수와 군의회에 강력 항의한 것. 울진발전포럼은 지난해 5월 북면, 기성면, 근남면 3곳에서 주민 5천200여명의 찬성 서명을 받아 방폐장 유치를 청원 했지만 예비신청권을 가진 울진군청과 군의회가 이를 거부했다.
포럼은 특별법 통과이후 방폐장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 청원을 다시 군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 또 한차례 의견 대립이 불가피하다. 포럼측은 "군수와 군의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퇴진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울진군은 지난 8일 군을 찾은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불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시민단체간 갈등도 적잖았다. 지난해 9월 방폐장 유치 예비신청서 접수 마감 일주일을 앞두고 울진군 전체가 찬반 집회와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대형스피커가 달린 차량이 울진 시내 곳곳을 돌며 찬반 선전전을 펼쳤다.
유치를 찬성하는 울진발전포럼은 군민투표를 실시해 주민 뜻을 따르자고 주장했고, 핵폐기물 반대투쟁위원회는 군민 분열만 일으킨다며 이를 반대했다.
울진은 지난 89년, 91년, 94년에도 방폐장 유치 반대로 홍역을 치렀다. 정부가 주민 여론에 아랑곳없이 일방적으로 후보지 중 하나로 끼워 넣으면서 시민-정부 갈등을 자초한 것. 대규모 시위가 울진 10개 읍·면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54일간 계속된 91년 시위에서는 주민 10명이 구속됐고 울진군청 등 관공서와 한전 변전소 등 정부 시설이 파손됐다.
'규탄대회 19회 1만 6천여명 참가', '7번 국도 및 포항시가지 점거 4회 3천여명', '관공서 침입 2회 800여명',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일괄 사표 91명', '과격시위로 4명 구속'.
지난 91년 12월 영일군(지금은 포항시) 청하면이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로 선정됐다. 이후 만 3년동안 면민들은 농사 일을 접어둔 채 방폐장 반대에 나섰다. 면민들은 지옥같은 3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면민들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 엄청난 태풍이 휘몰아쳤고, 결국 남은 것은 상처와 보이지 않는 갈등 뿐"이라고 했다.
청하 출신의 김종린 포항시의원은 "청하에 방폐장을 유치한다면 면민들은 또 다시 91년의 악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벌써부터 불안하고, 겁이 난다"고 했다.
영덕도 지난 89년과 2003년 두 차례 방폐장 홍역을 치렀다.
89년 경우 방폐장 반대 대책위원회가 결성돼 국도를 점거하고, 대규모 궐기대회를 가진 끝에 방폐장을 물리쳤다.
2003년에는 처음으로 민-민 갈등이 불거졌다. 유치 반대 쪽은 남정면 장사해수욕장 등지에서 여러 차례 국도 점거, 차량 시위 등 대규모 궐기대회를 가졌고, 유치 측과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방폐장 유치를 무산시켰지만 찬성과 반대간 반목만 남았고, 유치 반대 쪽 주민들은 집시법 위반 등으로 수백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부안의 전철은 밟지 말자
지난 17일 오후 포항공대 방사광가속기연구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경북 첫 방폐장 관련 설명회가 지역 시민단체, 청하면민 등의 행사장 점거로 무산됐다.
방폐장 유치와 관련, 물리적 충돌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지난 11일 울진군 북면 검성리. 방폐장 부지로 거론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마을의 주학중(72)씨 집에 모인 주민들에게 방폐장 유치 찬반 여부를 물었더니 모두 제각각이다.
"절대 안돼. 인근 부구리에 원자력 발전소가 10기(4기는 건설 예정)나 들어섰어. 그런데 또 핵시설이 들어온다고. 마을을 쓰레기 장으로 만들 순 없어."
"오라고 그래. 더 위험한 원전도 안고 사는데 방폐장 하나 들어온다고 무슨 상관이야. 내 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내가 치워야지."
한 주민은 "지난해 5월 찬성 주민들이 산업자원부에 유치청원서를 제출했지만 바로 그 다음날 반대 주민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며 "아무 생각없이 찬성쪽에 손을 들어 준 주민도 많았고 속으로는 찬성하면서도 반대 여론이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고 했다.
기성면 삼산리, 근남면 산포리 등 나머지 방폐장 후보지 두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찬성이 80%이상이라고 주장하는 주민들이 있는가 하면 결사 반대를 외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삼산리 한 주민은 "이러다가 이웃간 원수가 될까 두렵다"고 했다.
또 다시 과거의 홍역을, 부안의 전철을 밟아야 하는 것인가.
근남면 산포리 장광웅(65) 이장은 "주민들 스스로가 통일된 여론을 만들기는 과거에도 그랬듯 역시 힘들다"며 "갈등이 더 커지기 전에 정부나 군청이 나서 주민 공청회, 설명회 등의 민주적 협의 과정을 거쳐야 부안처럼 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울진발전포럼은 "특별법 통과이후 방폐장 찬성 여론이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며 "정부는 울진 군민들의 반핵 정서부터 고루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장식 포항시장은 "방폐장 유치가 대원칙이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고, 주민간 갈등이 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면 무리하게 방폐장 유치를 추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영덕 방폐장 유치 준비위원회 이선우 위원장은 얼마 전 반대측과 만나 모두가 영덕 발전을 위한 것이며 입장이 서로 다르더라도 과거처럼 물리적 충돌은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이 위원장은 "가정이 파탄하는데 벼슬을 하면 뭐하냐"며 "영덕 군민들의 입장을 사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절대 주민끼리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취재 기간 만난 유치 지역 주민들은 방폐장 유치를 찬성 하든 반대 하든 지자체, 정부, 주민 모두 감정보다는 이성을 갖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길 바라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무턱 댄 반대, 무조건적인 찬성은 평행선만 이룰 뿐"이라며 "주민들은 시위의 장이 아닌 공개된 설명회와 토론장에 나와 반대와 찬성의 입장을 밝혀야 하고, 정부도 방폐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또 "토론과 설명회, 정확한 정보 전달 등을 거쳐 결정된 의사를 존중하는 성숙된 주민의식이 필요하다"며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따르지 않으면 경북도 부안의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고, 결국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주민 반목과 상처만 남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기획탐사팀 이종규 이상준 기자 정치2부 최재왕기자 포항 임성남 영덕 최윤채 울진 황이주 기자
사진 : 위도 핵폐기장 백지화요구 부안군민 격렬 시위-지난 2003년 7월 14일 김종규 부안군수가 위도면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위도 유치를 전격 신청하자 부안군민들은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를 구성, 100일이 넘게 촛불집회를 열었고 서해안 고속도로 점거와 격포-위도 간 해상시위,부안예술회관 등 관공서 방화 등 격한 투쟁으로 유치 계획 백지화를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2003년 11월19일 전북 부안군민들의 군청 앞 시위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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