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마당-'학급일지' 폐지 환영

전교조와 교육청 사이의 단체 협상에 의해 교사들이 오랫동안 없어지기를 바랐던 학급일지가 사라졌다.

학급일지가 사라진 것을 반기는 것은 단순히 쓰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때론 학교 일정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했던 일들을 학급일지엔 사실 그대로 다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학급일지는 본의 아니게 거짓 일지가 되어 버린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학급일지 쓰기를 담당하는 학생이 어느새 거짓 기재를 알아서 척척 해 놓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다 담당 선생님이 벌을 주거나, 이런저런 훈화를 하거나, 그 외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를 했을 때도, 일지 담당 학생은 수업을 한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교과 진도 범위를 적어 놓는다.

종례 시간의 훈화도 5교시 전에 미리 매일 똑같이 써놓는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써놓는다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마치 기계처럼 써놓는다.

감사가 오면 출석부와 학급일지를 대조해 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담당 교사와 각반 일지 담당 학생이 모여 틀린 내용, 빠진 내용이 없는지 맞추어 본다.

아이들을 정직하게 가르쳐야 할 교사로서 허위 기재 방법을 훈련이라도 시키는 것 같아서 학급일지를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일지를 그렇게 쓰지 않았다.

주번이 되었을 때 그냥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썼다.

선생님들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썼다.

어떤 내용을 쓰라고 말씀하시는 일도 없었다.

그땐 학급일지가 검열 문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컵의 개수나 빗자루의 개수를 그날그날 헤아리며 숫자를 기입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거짓말 교육의 표본격인 학급일지를 폐지하기 위해 많은 교사들이 애를 썼고, 중간 역할을 하는 전교조도 단체 협상에서 그 건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진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 노고에 정말 감사한다.

받아들여 준 교육청에도 역시 감사한다.

앞으로도 교육청과 교사를 대표한 전교조가 머리를 맞대고 현장 교사들을 신명나게 하는 그런 일들을 많이 벌였으면 좋겠다.

박영숙(대구시 운암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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