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994년·2005년 북핵위기 닮은꼴?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미국의 '타협없는 핵포기 요구'가 충돌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원자로 가동 중단 및 폐연료봉 인출 주장이 터져나오고 미국 내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주장이 제기되면서 2005년 한반도는 1994년 상황을 닮아가고 있다.

1994년 3월 북한의 비협조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단을 소환한 뒤 이 기구의 이사회에서는 북한의 협조거부를 유엔 안보리에 정식으로 회부했으며 미국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남한 배치와 팀 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발표, 긴장을 고조시켰다.

같은 해 4월 북한은 5㎿급 원자로에서 연료봉을 교체할 의사를 밝히고 5월부터 핵 연료봉의 교체를 시작했다.

미국의 당시 유엔 주재 대사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북한에 대한 안보리 제재 결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협상에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협상을 통해 핵개발 프로그램의 동결을 약속 받았고 결국 북·미 양측은 회담을 재개, 94년 10월 기본합의문을 체결했다.

지난 3월 북한을 방문한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을 통해 북한은 2003년 2월 재가동한 원자로에서 핵연료봉을 인출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재처리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 북한은 원자로 가동을 중단, 연료봉 인출과 플루토늄 추출에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스콧 맥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8일 "북한의 도발적인 말과 행동은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라며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할 경우 우리는 틀림없이 다른 나라들과 함께 다음 조치를 협의하게 될 것이며 안보리 회부도 그 조치중 하나일 수 있다"고 밝혔다

1차 북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2002년 시작된 2차 북핵위기의 대결구도가 북한의 핵연료봉 재처리 주장과 미국의 유엔 안보리 회부 언급이라는 수순으로 정점을 향해 치닫는 분위기다.

그러나 1994년과는 다른 점도 눈에 띈다.

우선 남북관계 상황이 당시와는 많이 다르다. 작년 7월 김일성 주석의 10주기 조문 불허와 탈북자 대규모 입국으로 남북 당국간 대화 창구가 막혀 있지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사업 등은 순항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회부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가 이뤄진다면 남북간 협력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한 만큼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고 있는 민간기업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대북 경제제재에 선뜻 나설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1차 핵위기 때는 국외자였던 중국이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도 다른 점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4세대 지도부는 과거 중국 정부와 달리 북한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동조하기보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한 해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중재 역할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1994년의 경우, 미국은 북한에 양자 고위회담을 제의하는 등 적극적인 대화의지를 보였지만 현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다 1994년에는 존재가 분명한 영변의 핵관련 시설이 문제가 됐지만 이번에는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북한의 농축우라늄(HEU)에 미국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쉬워보이지 않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0년 전의 상황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며 "당시에는 한국정부가 대북강경책을 미국에게 요구했지만 지금 정부는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방관자 입장이던 중국이 이 문제에 강력히 개입되어 있다는 점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한국정부의 태도가 10년의 시차를 두고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수 개월째 공전하고 있지만 6자회담 틀이 열려 있는 만큼 미국도 외교적 노력에 무게를 둘 것이고 여타 회담 참가국들도 미국의 독주를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책적 조치를 위해서는 여러가지를 고려해 결정하는 만큼 상황을 단순화시켜 6월 위기설 등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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