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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에 달빛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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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이인상 외 지음/학고재 펴냄

배우자를 잃는 사별의 아픔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 것일까.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조선 선비 중 부인을 먼저 떠나 보낸 48인의 제문(祭文)을 모은 '빈방에 달빛 들면(학고재 펴냄)'에는 편짓글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전하고 있다. 특히 당시엔 전쟁이 빈번했고 치료약조차 제대로 없어 황망하게 아내를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 슬픔이 더 커보인다.

집안 살림살이는 부인에게 모두 맡기고 가정경제에 무관심한 채 글이나 읽고 시나 쓰던 선비들은 부인이 죽자 뒤늦게 후회하는 처량한 모습도 보인다. 그들은 '이제 내 해어진 옷은 누가 기워주며 내 끼니는 누가 챙겨준단 말이오', '제사를 모실 때 제수는 누가 마련한단 말이오'라며 부인의 부재를 실감하게 된다.

'집에는 쌀 한 톨 없었지만 내가 술을 좋아하는 걸 알고 난리통에 도망가는 와중에도 술은 떨어지지 않게 해주었소. 당신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어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만은 평소와 다름없이 술 마시고 배불리 먹게 해주었소. 그런데 이제 누구를 믿고 술을 마셔댈 수 있겠소'라고 적은 정양의 글을 통해 당시 여자로서 겪어야 할 삶의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다.

전쟁 중에 부인을 잃어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광해군 때 우승지를 역임한 조한찬은 갑자기 쳐들어온 왜적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르지만 왜적과 마주치자 조한찬은 도망치고 부인은 그 자리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아이가 없거나 아직 어려 아이들이 앞가림도 못하는데 젊은 나이에 훌쩍 떠나버린 아내에 대한 원망이 비치는가 하면 백년해로하다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운 마음은 더욱 애절하다. 잠든 아들이 어머니를 찾을 때, 이웃집 아이들이 어머니를 부르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는 안타까움이 더한다.

조선 명종 때 좌부승지와 관찰사를 지낸 권문해는 아내에게 "추울까봐 옷 한 벌 지어 보내오. 친정어머니께서 손수 바느질하시느라 옷깃에 눈물이 젖어 있을 테니 천년 만년 입어도 싫증 내지 말구려"라며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등 선비들의 제문을 통해 당시 습속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순조의 외조부 박준원은 장모 곁을 떠날 수 없어 장모를 모시고 살았으며, 출가한 딸이 남편과 시댁을 떠나 몇 년간 친정에서 살기도 한 사례도 눈에 띈다. 저승에 가서도 시부모를 잘 모셔달라고 부탁하거나 또는 먼저 떠난 처첩들과 우애를 당부하는 등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 당시 변변한 의약시설이 없어 한번 돌림병이 돌게 되면 가족 중에 줄초상이 나는 일도 허다했고 가벼운 종기에도 죽는 등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안타까운 사연들이 즐비했다.

수백 년 전, 살아서는 내외간이 유별해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던 선비들이 죽어서야 고백하는 애틋한 사연을 읽으며 부부의 정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면 다음 생을 기대해볼 밖에-조지겸" "아, 못다한 말과 끝없는 정을 영혼은 묵묵히 돌아보시길-이상정" "밥상을 앞에 놓고도 함께 마주 앉을 사람이 없고, 손자들이 앞에서 재롱을 부려도 함께 웃을 사람이 없으니, 이런 것이 살아 있는 나로서는 잊기 힘든 애통함이구려-홍양호" "죽어서 영혼이 있다면 나도 곧 뒤따라 갈 테니 우리가 떨어져 있을 날이 얼마나 있겠으며 죽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나도 곧 죽을 테니 슬퍼할 날도 얼마 안 될 것이다-민유중".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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