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정찰명령 1호 하달

"제4사단장 귀하/정찰명령 제1호/1950.6.18/조선인민군총사령부/1.야포대를 포함한 적 …/조선인민군최고사령부 사령관/정보본부사령관".

1950년 6월 18일 북한의 민족보위성(우리의 국방부)은 각 사단장 앞으로 대남 정찰명령을 하달했다. 이는 소련 군사고문관들이 작성한 작전명령을 한국어로 번역한 뒤 전선(前線) 사령관부로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대남 침공 전에 한국군 주력부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작전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정찰활동을 개시하라는 것이었다.

1950년 10월 4일 국제연합군이 서울에서 노획한 이 명령서에는 공격개시 후 서울로 통하는 방어선에서의 한국군 저항 핵심부 정찰 명령도 포함돼 있다. 이 문서는 6·25 전쟁이 남침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결정적인 증거의 하나로 남아 있다.

공격개시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된 북한은 1950년 6월 22일 다시 '전투명령 제1호'를 내려보냈다. 6월 23일 24시까지 공격준비를 완료하라는 내용을 담은 문서였다. 명령을 받은 북한군 제4사단장 이건무는 바로 각 예하부대에 만반의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인 6월 25일 새벽 4시, 남과 북 사이 씻을 수 없는 동족 상잔의 비극이 시작됐다.

미·소로 나뉘어진 냉전의 상징적인 전쟁, 그 포성은 수많은 희생을 겪으며 3년이 지나서야 멎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잔영으로 민족적 역량을 허비하고 있다.

▲1891년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출생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내각, 주 40시간 노동제 가결 ▲1981년 한국팀, 국제기능올림픽서 4연패 달성 ▲1989년 차범근 선수, 구서독에서 프로 축구선수 은퇴 선언.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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