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없는 수도를 사이하여 바라 뵈는
뭍에선 봄기운이 띠를 둘러 흐르는데
세월은 주저앉은 채 한 시름 푸는 중이다.
갈매기 두어 마리 무심 끝에 오르고
다만 손짓으로는 가릴 수 없는 햇살,
화안한 배추밭 하나 눈썹 위에 와 있다.
아무리 둘러봐야 드디어는 물새처럼
모가지 휘어지는 하얀 뒷덜미 설움
뭍으로 오르다 그만 지쳐 쉬는 바다여.
박재삼 '섬에서'
섬에서 주저앉은 채 한 시름 푸는 중인 세월을 읽는다.
참으로 여유로운 눈길이다.
눈썹 위에 와 있는 화안한 배추밭과 무심 끝에 오르는 갈매기 두어 마리…. 끝내는 물새처럼 모가지 휘어지는 하얀 뒷덜미 설움을 느끼며 지쳐 쉬는 바다에 말을 건넨다.
일찍이 미당(未堂)이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고 읊은 그 어쩌지 못할 한계의식을 언뜻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박재삼은 그의 스승 김상옥과 더불어 특유의 가락과 그 누구도 좇을 수 없는 잘 조탁된 우리말로 빚은, 빼어난 시조와 시를 적잖이 남긴 시인이다.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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