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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남극조약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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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 23일 남극대륙의 국제법상 지위를 정하고, 그 이용 원칙을 확립한 남극조약이 발효됐다. 조약은 남극의 평화적 이용, 과학적 탐사의 자유, 영유권 동결, 핵실험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남극조약의 필요성은 남극이 여러 나라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대두됐다. 19세기 이후로 탐험가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많은 국가들이 남극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1908년부터 1945년까지 영국, 노르웨이, 칠레 등 7개 국가는 정식으로 영유권을 주장했다. 미국과 소련 등의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소는 아예 7개국의 영유권 주장을 부인하며 자신들의 이해에 맞는 논리를 펼쳤다. 이러한 국가 간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1948년에는 영국'아르헨티나'칠레 사이의 외교 각서 교환, 전투함 출동까지 부른 분쟁사태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지구물리관측년(IGY, 1957~1958)은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큰 자극이 됐다. 대규모 국제과학활동을 기반으로 해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하나의 제안을 했다. 남극이 정치적 분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고, 과학적'평화적 활동의 장이 되는 것을 보장하자는 것.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1959년 10월 미'영'소'일 등 12개국이 회의를 열고 협약문을 채택, 12월 1일 서명했다.자칫 국제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었던 복잡한 문제를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모범 사례라 하겠다.

▲1884년 청'프랑스 전쟁 발발 ▲1951년 유엔주재 구소련 대표 야코프 말리크, 한국전 휴전 제의 ▲1973년 박정희 대통령, 6'23 선언 발표.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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