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렁 한복판을 느릿느릿 간다 저런 절 한 채를 뒤집어쓰고 살
수 있다면…… 동해안 아름다운 길 길게 풀린다.
문인수(1945~ ) '달팽이' 전문
이 스피디한 시대에 달팽이가 느리게 기어가는 모습을 포착한 것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시인은 달팽이가 짊어지고 있는 집을 절이라고 합니다. 절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존재인 절대자와 만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니 지금 달팽이가 검은 수렁 한복판에 있다고 해도 절을 한 채 뒤집어쓰고 있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이 시에서 '검은 수렁 한복판'과 '동해안 아름다운 길'의 대비는 대단히 매혹적입니다.
달팽이가 가고 있는 '검은 수렁'은 길게 풀리는 '동해안 아름다운 길'에서 갑자기 밝고 넓은 해방의 공간으로 전환되지 않습니까? 이 놀라운 이미지의 전환은 읽는 사람들의 의식을 환하게 열어줍니다.
이진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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