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국에 단 10명…희귀병 '혈액기형' 앓는 황승규(13)군

한낮이지만 아들은 깊게 잠들어 있다. 모처럼 깊게 긴 잠에 빠져든 것을 쳐다본다. 그래, 니 몸 속에서 빠져나오는 까만색 오줌도, 피 섞인 똥도 니가 잠들어있을 때만큼 널 괴롭히지 않을테지. 잘한다 우리 아들, 내 희망이자 내 전부. 엄마는 니가 깨어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게.

5년 전 코피를 흘리며 집으로 왔을 때 엄마는 벌벌 떨었단다. 그 작은 콧구멍에서 얼마나 많은 코피가 흘러내렸는지, 옷은 온통 피로 젖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산 송장 같았지 뭐야. 그래도 아프다고 보채지도 않던 니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낳은지 7개월도 안된 니 누나를 보냈던 기억에 내 가슴이 얼마나 놀랐던지. 넌 죽지 말고 내 곁에서 살아줘야 해. 알았지 우리 아들?

내 아들 황승규(13). 7번 혈액성분이 결핍된 혈액기형아. 전국에서도 10명 정도 밖에 없다는 희귀병이다. 작은 상처에도 피가 멈추지 않고 응고도 되지 않는 출혈성질환을 앓고 있다. 5년 전 만성심부전증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대단찮은 병인줄 알았던 이 엄마를 용서해. 겉으로는 증세도 없고 단지 몸이 약한 줄만 알았던 엄마를 용서해. 내가 너무 오래 방치해서 니가 이렇게 됐는데…. 내가 무슨 염치로 너에게 용서를 구할까. 차라리 '왜 일찍 병원치료를 안 해줬냐고, 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냐고' 따져묻고 고함치고 울었으면 좋겠단다. 그래준다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 같은데 말이다.

모두 이 엄마 죄야. 아빠(45)가 집도 돌보지 않고 노름에만 빠져있을 때 어떻게든 살아보려 혼자 아둥바둥했단다. 너희들을 학교로 보내놓고 파출부에 식당 보조를 전전하며 그 한푼을 벌겠다고…. 승규야 나중에 다 얘기할게. 너한테 용서를 빌게 하나 더 있거든. 아빠하고 엄마는 이제 남이 됐단다. 애 앞에서는 헤어진 부부도 다시 만난다는데 우리 부부는 철이 덜 들었나봐. 니 앞에서 싸움만 하는 것도 지겹고 널 감당할 여력도 없대.

아빠 덕분에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도 팔았단다. 엄마는 요즘 일거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니가 자꾸 눈에 밟혀 그마저도 참 어렵네. 참 우리 이사했어. 엊그제 북구 태전동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 한칸을 얻어서 태규(12)랑 살고 있어. 태규도 형아 많이 보고 싶어 해. 형아랑 같이 축구하고 싶다고 막 보채는데 니가 일어나면 동생이랑 놀아줘 알았지.

니가 입원한 지 이제 3달이 됐지. 병원비가 2억 원쯤 나왔다는데…. 수술비가 비싼게 아니라 혈액응고 주사약이 비싸기 때문이래. 의료보호 1종인데도 이렇게나 많은 병원비가 나와 깜짝 놀랐어. 그래도 복막투석에 4가지나 되는 약물을 투입하고 있는 니가 더 괴로울 거 같아 내색도 못하겠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큰 병이긴 하지만 꾸준히 약물치료하면 살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했단다. 엄마는 희망을 잃지 않겠어. 일어날 수 있대잖아. 2천cc나 되던 장출혈도 많이 줄었고, 숨도 제대로 쉬고 요즘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 보여줘서 엄마는 니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이제는 30kg도 채 안되는 우리 아들. 300kg가 되도 좋으니 제발 살아줘. 엄마는 그 때를 꿈꾸며 어떻게든 살아볼게. 사랑한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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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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