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장애인 20명 한밤의 앞산 정상 올랐다

대구 앞산에서 비장애인에게도 쉽잖은 난코스를, 지팡이가 아닌 자원봉사자의 손에 의지한 시각장애인들이 암흑을 헤치고 앞산 정상정복의 환희를 만끽했다.

12일 밤 10시쯤 앞산 달비골 입구. 파라다이스 복지재단의 후원으로 '시각장애인 철야등산캠프'가 준비중인 이곳에서 KT대구지사 '사랑의 봉사단' 단원 20여명이 심야등반에 대한 특별강의(?)를 듣고 있었다.

"등반 중간에 랜턴을 끄겠습니다. 불빛이 있는 곳까지만 여러분이 시각장애인을 안내하고 그 이후에는 같은 처지에서 등반하겠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 서관수 교육재활팀장이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줄 봉사단원들에게 산행요령을 설명했다.

30분쯤 뒤 시각장애인 20명이 모였고 '파이팅'을 외치며 산행을 시작했다. 걸음이 비장애인보다 결코 빠를 수는 없었지만 한 팀이 된 서로가 보폭을 재고 속도를 조절하며 산정상을 향했다.

"믈 웅덩이가 있어요." "자갈이 많아지는 곳이니 조심하세요." 봉사단원들이 지형지물을 놓치지 않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 김진호(51.달서구 용산동)씨는 "야간등반은 처음인데 이 시간에 이렇게 시원한 밤공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시각장애인들은 안내자가 없으면 집밖으로 한발짝 내딛는 것이 큰 고통이지만 오늘은 정말 특별한 하루가 될 것 같다"고 했

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쯤 지나자 가로등이 사라지는 산길이 나타났다. 서 팀장이 "이곳부터 '달빛등산로'가 시작됩니다. 모두 랜턴을 꺼 주십시오"라고 외치자 주위는 삽시간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암흑상태가 됐다.

우왕좌왕하는 틈도 잠시, 어둠에 익숙한 시각장애인들이 능숙하게 비장애인을 이끌며 등반을 시작했고 온통 까만 세상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됐다. 제일 앞선 사람이 나뭇가지에 종이를 붙여 길을 만들어 나갔다.

자원봉사자 박순석(46.북구 관음동)씨는 "눈을 뜨고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우리의 손을 이끌고 한발 앞서가는 장애인들이 정말 대단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능선을 따라 걸음을 계속한 이들은 앞산 정상의 헬기장에서 '야호! 우리는 해냈다' '할 수 있다' 는 함성을 외쳤다. 새벽 5시 30분쯤 안일사쪽으로 내려오는 7시간의 긴 산행을 마쳤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시각장애인과 봉사단원들이 무박의 앞산 야간 등반을 위해 등산로에 들어서고 있다. 김태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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