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닉슨

불신조장 사회와 망상증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닉슨'은 미국 최초로 대통령을 탄핵으로 물러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1972년 6월 워싱턴. 38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 5명의 남자들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후보 사무실에 침입해 도청장치 설치를 시도했다. 닉슨 대통령의 법률 고문은 무단 가택 침입과 도청 혐의로 기소되고, 체포된 5명의 무단 침입자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배후로 의심을 받던 닉슨은 부분적인 책임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통령이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한 민주당 의원들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닉슨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이때, 백악관 보좌관으로 일했던 버터필드가 대통령 집무실의 대화 내용이 기록된 비밀 테이프의 존재를 폭로한다. 테이프를 공개하라는 여론이 들끓지만, 닉슨은 국가 보안을 이유로 테이프 공개를 거부한다. 또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맡은 특별 검사 콕스가 공식적으로 증거 제출을 요구하자, 닉슨은 검사를 해임한다.

하지만 결국 1973년 7월, 문제의 테이프가 공개되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될 부분은 이미 삭제된 뒤였다. 이렇게 되자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직접 지시했다는 여론이 확고해진다. 1974년 8월 8일 미국 대통령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인정하고 사임성명을 발표한다.

최근 불거진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은 필자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다. 환자들의 상태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32세의 강씨는 몇 년 전부터 안기부에서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는 망상을 가진 망상장애 환자다. '자신의 휴대전화가 도청당하고 있다. 안기부 직원이 미행하고 있다'는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이 주 증상이었다. 너무 불안해서 미국으로의 이민도 생각했지만, 이젠 위성을 이용한 도청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세계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무기력감에 빠져서 죽고 싶다고 하였다. 병전에 국내통신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었던 강씨는 도청은 망상이라고 한 의사를 몰아세우며, 이번 X 파일 보도를 보며 도청은 사실이지 않느냐고 따졌다. 잠시 할말을 잊었다.

편집증 환자인 강씨는 자기 내부의 불안감을 외부로 투사시켜 외적인 위협이라고 믿고 있는 정신병 환자다. 자신이 특별하여 정부 기관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박해하려 한다고 믿음으로써, 무력감과 열등감을 보상하려고 한다.

망상이란 환자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 고착되어, 어떤 설득으로도 교정되지 않는 믿음을 말한다. 과거에는 망상의 주제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으나, 요즘은 그런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에 복제인간, 뇌 속에 마이크로 칩의 주입, 도청, 몰래 카메라 등의 주제가 흔하다.

사회적 배경은 망상 내용을 지배하고 있다. 노먼 카메론은 어떤 사건에 대해 숨은 의미나 동기가 있지 않은지 심사숙고하게 되거나, 불신과 의심을 조장하는 사회는 망상증을 발달시키기 쉽다고 했다. 물론 망상장애는 개인의 생물학적, 정신역동적 요인에 의해 발병하지만, 신뢰가 결핍된 사회 또한 한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누군가 어떤 악의를 가지고 음모를 꾸미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신이 조장된 사회는 정신병을 양산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정치인의 책임 범위가 이 환자들에게까지 확대돼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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