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린 생명 살리자"…아름다운 회항

LA행 대한항공, 이륙후 연료 73t 포기

"응급환자가 생겼다. 긴급 회항하겠다" 인천을 떠나 로스앤젤레스(LA)로 가던 여객기가 이륙 직후 응급환자가 생기자환자 보호를 위해 항공유 73t을 바다에 쏟아붓고 회항했다.

26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25일 오후 3시18분 인천공항을 이륙한 LA행 대한항공 K E017편이 항로에 접어든지 10분 만에 긴급환자가 발생했다. 엄마(33)와 함께 비행기에 탄 어린이 승객 L(5)양이 39도의 고열과 함께 의식이혼미해지는 '열성 경련' 증세를 보인 것.

승무원들은 응급조치 후 탑승객 중 의사가 없는지 수소문한 끝에 유명 대학병원의사를 찾았다. L양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이 의사의 진단에 따라 비행기는 결국 기수를 돌리기로 했다.

하지만 회항 결정 뒤에도 고민은 이어졌다. 모든 항공기는 공항 이·착륙 무게에 제한이 있는데 인천-LA 노선에 투입되는 B747 기종은 최대 이륙중량은 388.7t이지만 최대 착륙중량은 285.7t이어서 착륙을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항공유를 버려야했기 때문.

이·착륙 중량이 다른 것은 이륙은 활주로에서 날아오르는 것으로 끝나는 반면착륙할 때는 랜딩기어가 활주로에 닿으면서 100t에 가까운 충격이 더해지기 때문에항공기 안전을 위해 중량을 최대한 줄여야만 했던 것이다.

비행시간이 12시간 가량 소요되는 LA 노선은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100t 이상의연료를 소모해야 도착지에서 무리없이 착륙이 가능하지만 이 항공기는 이륙 직후 인천공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장거리용으로 가득 채운 항공유가 문제가 된 것.

선회 비행을 하던 항공기는 결국 긴급회항을 위해 인천 앞바다 부근 '항공유 방출구역'에 16만 파운드(약 72.6t)의 기름을 쏟아부은 뒤 오후 4시48분 인천공항에착륙했다.

이날 버린 항공유는 약 4천만원 어치. 최근 국제유가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배럴당 67달러를 돌파해 '70달러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엄청난 양의기름을 바다에 흘려버린 것이다.

오후 5시5분께 착륙 후 어린 환자는 곧바로 공항 의료센터로 직행, 정상을 되찾았고 비행기는 버린 만큼의 기름을 재급유한 뒤 오후 6시22분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일본이나 앵커리지 등으로 회항하는 사례는 가끔 있지만 이륙 직후 인천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많은 기름이 버려졌지만 상태가 좋지 않았던 환자의 건강이 회복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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