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설픈 배우들은 떠나라"

정해진 홍보 일정이 끝난 뒤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런데도 흔쾌히 OK를 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의 개봉 3일 전의 느지막한 저녁에 신문사를 찾은 차승원.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서는 그의 모습을 보곤 "아차" 싶었다. "괜히 인터뷰 신청을 했구나" 후회했다. 퀭한 눈, 세균성 바이러스 염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차승원은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수십여 건의 인터뷰를 마쳤고, 오락프로 나들이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개봉 2주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한명의 관객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영화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차승원의 무한 애정이 관객들을 '전염'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 흥행 성적도 대박이고, 그의 무대인사 또한 대박이다. 노래와 큰 절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차승원을 놓고, 관계자들은 "스크린 안팎에서 그만큼 관객들과 소통이 잘 되는 배우는 드물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몇 년 전 홍콩에서 성룡을 인터뷰했을 때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한국에서 단역배우로 활동했던 무명시절을 먼저 털어놓으며 '지한파'임을 강조했던 성룡. 며칠 뒤 호텔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기자단에 먼저 다가와 "좋은 기사 부탁한다"고 한국어로 인사했다. 100여명의 아시아 기자들이 오가는 로비에서 한국 기자단을 알아본 것도 놀라웠지만, 한마디라도 더 거들려는 마음씀씀이에 감동했음은 물론이다.

안성기, 박중훈 등도 홍보 내공이 만만치 않은 충무로 대표배우다. 프로 근성으로 중무장한 그들은 인터뷰를 하는 기자까지도 팬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역시 장수 배우들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모든 배우들이 이들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포스터에 자신의 이름이 뒤에 있다는 이유로 홍보를 마다한 A, 석연찮은 이유로 무대인사를 취소한 B, 최근 3~4명을 묶어 단체 인터뷰를 한 C까지 홍보담당자의 가슴에 피눈물이 흐르게 만드는 배우들도 있다.

특히 C는 개봉 전 1대 1 인터뷰를 하는 관례를 깨고 기자회견과 별반 차이가 없는, 그룹 인터뷰를 요구해와 '화제'가 됐다. 당시 홍보사의 설명은 "개인 일정이 있어 단 이틀 만에 인터뷰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봉을 앞둔 주연배우에게 집안의 경조사도 아니고, 결코 조정할 수 없는 개인 일정(더구나 홍보사는 그 일정이 무엇인지 알지조차 못했다)은 무엇이었을까.

내친 김에, 호텔에 무슨 한 맺힌 듯한 배우들 이야기도 해보자. 사실 시어머니 잔칫상 차려주는 심정으로 호텔에서 인터뷰를 해치우는 배우들도 '노생큐'다. 호텔 인터뷰라는 게 도대체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흥이 안 나게 마련이다. 하루종일 같은 방에서 1시간 간격으로 기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배우는 쳇바퀴 도는 느낌이 들 터. 기자 또한 다른 기자가 데워 놓은 방석의 온기가 식기도 전에, 그것도 이미 지친 배우를 상대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바로 옆방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재촉 소리를 듣는 것도 즐겁지 않다.

상업 영화 한편을 내걸기 위해선 최소 30억은 들어간다. 영화 한편의 흥망이 수십명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곤 한다. 꿈과 열정만으로 1년여를 버틴 스태프들이 스포트라이트 뒤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셀프 카메라나 찍으라고 권하고 싶다. 상업배우로서 관객들과의 소통을 게을리하는 것을 그 어떤 이유로 용서받을 수 있을까. "영화는 관객들과 만나는 순간 진정 완성되는 것"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을 친다.

스포츠조선 전상희 기자 no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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