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기보다 무덤덤하던데요. 그러면서 무섭기도 하고 긴장이 되더군요."
서양화가 서영배(37) 씨는 광주시립미술관으로부터 하정웅 청년작가초대전 '빛 2005' 참여작가 선정 통보를 받았던 순간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든 결과는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단다.
청년작가초대전은 올해가 5회째로 '독창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젊은 작가 발굴'을 목적으로 한다.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이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면서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됐다.
다른 지역의 작가 5명과 함께 선정된 서씨는 통화가 끝난 후에야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오더라고 했다. 서씨는 "무엇보다 미술가로서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더군요. 구상 미술이 강한 대구에서 줄곧 현대미술을 하며 그냥 묵묵히 작업만 해왔죠. 이번 선정으로 더 큰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라고 느낌을 밝혔다.
"왠지 어깨가 무거워지더군요. 제가 인정을 받은 만큼 주위의 다른 작가들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씨는 다른 지역에 대구 미술가들의 작업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기로 했다. 11일 시작된 울산에서의 그룹전이나 23일부터 열리는 광주 전시에 작가들 포트폴리오를 들고다니며 홍보에 나설 예정이다.
선정 직후 서씨가 떠올린 인물은 '가족들과 지인들'이었다. 불투명한 작가 생활에 대해 끝없이 관심과 격려·애정을 보여준 그들에게 조금은 떳떳해질 수 있었다. 서씨는 "앞으로도 더욱 지지해 달라고 할 수 있게 됐죠"라고 말했다.
서씨의 작가관에 대해서 물어봤다. 서씨는 "무엇보다 인간이 돼야죠"라며 '자긍심'과 '선비정신'이라는 두 단어를 언급했다. 어렵고 힘든 작업이지만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현실의 고통을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실험'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작품활동이 작가의 '독백'이라는 서씨는 "창작과정이 즐거워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즐겁게 작업해야 그것이 작품에 묻어나고 관람객들도 쉽고 즐거운 감상이 가능해진다는 논리다.
그래서일까? 서씨는 관람객들에게 작품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전시를 감상자들과의 '대화'로 보고 작품에서 '무엇이다'가 아니라 '무엇일 수 있겠다'란 상상의 자유를 주고 싶어한다. 서씨는 "미술이란 관람객과 작가가 함께 작업에 대해 상상하고 즐기고 놀이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욱 여유가 있다면 음식처럼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좀더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라는 것이다.
서씨는 향후 작업은 '공간을 채우고 담던' 것에서 '비우고 덜어내는' 것이 될 것 같네요"라고 했다. 얼마 전 무용 공연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는 것이다. 서씨는 이 깨달음의 순간 '작가로서의 희열과 목마름을 같이 느꼈다'고 했다. "작품의 완성도가 99%일 때 안주하지 말고 모험을 하라. 그러면 99%는 실패하겠지만 나머지 1%의 새로운 시도가 작가를 발전시킨다"는 한 원로화가의 말에 감명받았다는 서씨는 앞으로도 더욱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다.
▨특이한 경력
서씨의 경력은 화가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특이하다. 화가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그림도 곧잘 그렸지만 주변의 반대로 그만뒀다. 학창시절 '하고 싶은 것은 당장 하자'는 생각으로 살았다. 산을 찾아 식물에게 말을 걸고, 투견대회에도 참여했다. 정적인 삶에 비해 '땀흘리는 것이 좋아' 복싱·태권도·격투기 등도 열심히 배웠다. 군생활도 특수부대에서 5년간 했다. 미술계 입문은 꽤 늦었지만 열정과 신념 하나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작품세계
서씨의 작품은 '개'나 '동물'에서 출발해 다른 물질들과의 만남(물성의 충돌)으로 확대되고 있다. 표현양식도 회화에서 사진·설치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해왔다. 광주전시회에는 최근 작업인 영상·사진·오브제(동물의 털·나무·철)를 활용한 것들이 전시된다.
특히 '구(球) 작업'은 40여 개를 전시장 바닥에 자연스럽게 배치해 전시공간을 벽면에서 바닥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흐릿해진 사진들로는 정체성의 모호함이라는 문제를 던져준다. '투견과 관련된 오브제와 비디오 설치 작품'을 통해서는 영광 뒤에 멍들고 지친 현대인의 육신을 표현한다. 눈에 보이지만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은 작품들은 '안과 밖' '전체와 부분' '숨김과 드러냄' '진실과 허상'의 차이와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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