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노오란 농구화 차림의 박용래 선생이 까치머리 위의 수북한 흰 눈을 털며 무교동 술청 안으로 들어서는데 그날따라 도둑괭이처럼 아랫배가 불룩해 보였다. 사람들이 다소 의아해 하자 스웨터 밑을 툭툭 치며 거기에 큰딸 연이의 이화대학 등록금이 몽땅 들어 있노라며 아주 조심조심 말하는 것이었다

이시영(1949∼ ) 함박눈 내리던 날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박용래 시인만큼 시인적 기질을 갖춘 시인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시인은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해야 하고, 자신의 외모를 너무 깎은 밤처럼 깔끔하고 단정하게 다듬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일찍이 시인 고은은 말했다. 넥타이도 삐뚜름하게 매어져 있고, 단추도 느슨하게 풀려져 있어야지 너무 빈틈없고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시를 못쓰는 시인일 거라고 역설한 바 있다. 물론 이런 일도 술자리에서의 웅변이었다.

전형적 충청도인의 기질을 지니고 있었던 시인 박용래의 기질은 하염없이 섬세하고 유순하며,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조금이라도 격한 정황에 휩싸이거나 감정이 넘치게 되면 처음엔 두 손바닥을 합장하듯 앞가슴에 모은 채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곧 봄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이렇게 우는 버릇은 그의 말년까지 계속되었다. 후배 시인들이 그의 눈물에 지쳐서 함부로 말을 하고 나무라며 업신여기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비극적 삶을 살았던 시인은 이 세상을 남에게 알리지도 않고 조용히 떠나갔다.

얄팍한 계산과 이욕에만 재빠르고, 철저히 자기밖에 모르는 우리 주변의 시인들은 박용래의 삶에서 커다란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눈 뜨고도 진리를 보지 못하는 그들은 자신의 청맹(靑盲)을 반성하기는커녕 박용래 같은 시인이 우매한 삶을 살았다며 오히려 비웃을지도 모른다.

이동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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