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국정원 도청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이 14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갖가지 궁금증을 해소했지만 도청이 사회에 안겨준 충격만큼이나 컸던 의문점의 일부는 여전히 남아있다.
◇'테이프 내용' 수사에 반영됐나=우선 검찰이 파악한 미림팀 도청 테이프 274개의 내용과 그 내용을 각종 의혹 규명에 반영했느냐는 게 큰 관심사다.
검찰이 수사검사 1명을 지정해 파악한 도청 테이프 274개에는 이건모 전 국정원감찰실장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상상을 초월한 대혼란이 야기될 핵폭탄'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민감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검찰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 테이프에 담긴 도청 대상은 정치인 273명, 고위공무원 84명, 언론계 75명, 재계 57명, 법조계 27명, 학계 26명, 기타 104명 등 총 646명으로 사실상 우리 사회의 '파워 엘리트'들을 망라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은 테이프의 불법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테이프 내용을 확인했으나 이번에 공개하지 않아 그동안 제기된 다양한 의혹들은 여전히 안개 상태다.
따라서 이른바 '떡값 검사' 의혹이나 1997년 당시 삼성이 이회창 후보에게 89억 원, 김대중 후보에게 수억 원의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 강경식 전 부총리 수뢰의혹 등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린 사건들이 테이프 내용과 일치하는지는 미지수인 셈이다.
이들 의혹은 검찰이 '향후 수사계획'으로 남겨놓은 노회찬 의원 고소사건과 관련이 있어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라는 여론의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각종 도청정보 대통령은 몰랐을까=YS 시절 활동한 미림팀의 도청정보는 당시 실세인 이원종 정무수석과 김현철 씨에게 '경쟁적으로' 보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미림팀 보고서가 YS에게 '직접' 전달된 정황은 없고 안기부장 등도 직접 보고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안기부장 주례보고 내용에 미림팀 수집첩보가 포함되는 경우는 있었다고 밝혔다.
YS가 미림팀의 도청사실을 알았다고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전혀 몰랐다고 볼 수도 없는 정황까지만 검찰이 수사하고 공개한 셈이다.
DJ 시절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검찰은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을 구속한 배경 중 하나로 "대통령의 도청 금지 지시를 정면으로 어겼다"는 점을 들어 DJ는 도청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DJ는 두 전직 국정원장에게 '배신감'을 표현하지 않았고 동교동계는 검찰 수사에 강한 불만을 표했는지가 의문이다.
◇도청내용 추가 유출은 없을까=검찰이 확보한 도청자료는 공운영 씨에게서 압수한 미림팀 도청 테이프 274개와 박인회 씨에게서 압수한 'X파일' 자료, 전직 국정원 직원 자택에서 압수한 '언론대책문건' 관련 테이프 등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뿐일까'라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특정 시기에는 외부 인사에게 미림팀 보고서가 유출된 사실이 있고 미림팀 외의 안기부 부서가 도청을 하기도 하고 미림팀 'A급 망원(정보원)'들은 스스로 손님들을 도청해 보고해 온 사례도 있어 이런 테이프가 더 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검찰은 전직 미림팀원이었던 박모 씨가 올 1∼6월 사이 예전 망원이었던 한정식집 지배인 등과 접촉해 주요 정관계 인사들의 예약상황을 파악한 것이 도청과 무관하다고 발표했지만 박씨가 '옛 실력'을 발휘했던 것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법조인 도청…압력행사는 없었을까=미림팀 도청 대상 중 법조계 인사는 27명이다. 국정원의 전화 도청 대상은 관련자료 파기로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고위공직자가 5%(약 90명)라는 점을 감안하면 법조인들도 상당수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수사와 재판을 담당하는 법조인들이 정보기관의 도청 대상이 됐다면 수사진행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 권력자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정보를 쥐고 있는 권력자가 검사와 판사들의 업무상 비밀이나 사생활을 파악하고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사건에 영향을 끼칠 만한 압력을 가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건희 회장 정말 개인 돈 썼나=이건희 회장 측이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성 씨에게 제공한 40억∼50억 원이 회삿돈이 아닌, 개인 돈"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법리상으로도 그렇게 해야 특경가법상 배임 및 횡령죄를 피할 수 있고 검찰이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정치자금법 위반죄에 불과해 '공소시효 완료'라는 방패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이학수 부회장, 홍석현 전 주미대사, 김인주 전 재무팀장 등 '이건희 사단'을 잇따라 소환해 조사하면서도 이건희 회장은 서면조사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엄격한 증거에 따라 수사하고 기소하겠다는 검찰 입장에서야 물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건희 회장이 회삿돈을 썼다고 확언하기 어렵지만 과연 그런지는 '서면조사'만 받고 끝낸 이건희 회장과 그 주변 몇 명만이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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