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위 농민 잇따라 사망…'인권경찰' 위기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농민시위에 참가했다가 중태에 빠져 치료를 받아오던 농민 홍덕표(68)씨가 18일 끝내 사망해 '인권경찰' 을 표방해온 경찰이 위기를 맞게됐다.

전용철(43)씨에 이어 홍씨가 시위 도중 경찰과 충돌한 뒤 숨진 것이어서 허준영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가 그동안 대내외에 천명해온 '인권 지킴이' 구호가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특히 전용철(43)씨와 달리 홍씨의 경우 진압 경찰의 폭행이 직접적인 사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경찰 수뇌부 인책론까지 불거질 것으로 점쳐진다. 경찰은 이달 14일 전씨 사망에 대해 "시위현장에서 다친 것은 확실하지만 경찰의 폭행 여부는 조사 중이다"라며 사망에 대한 경찰의 직접적인 책임 인정을 일단유보했다.

하지만 홍씨의 경우 "시위현장에서 진압경찰에게 가격을 당해 부상했을 가능성이 현저하다"며 경찰의 잘못을 사실상 시인했다.

홍씨는 집회 현장에서 다쳐 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경찰에게 맞았다'고 의사한테 직접 얘기한 데다 인중과 이마의 상처로 보아 경찰에게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여의도 농민시위에 참가한 농민 2명이 시위과정에서 입은 부상으로 결국숨을 거두자 '과오'를 인정하면서 관련 경찰관 문책 등을 통해 발등의 불을 끄려하고 있으나 분노한 농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경찰청은 여의도 시위 진압 책임자였던 서울경찰청 이종우 기동단장을 직위해제하고 문책키로 약속한 바 있다.

경찰은 한때 죽창과 각목으로 전경들을 폭행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등 과격시위를 벌인 농민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파손된 물품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농민 사망이 잇따르자 기존 입장에서 슬그머니 물러나는 태도를보이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17일 "불탄 차량과 장비에 대해 손해배상 1억원을 청구하겠다.

불법폭력시위자에게 절대 사과할 수 없다"고 공언했으나 지금은 "분위기가 예민해아직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했다. 경고적 의미로 손해배상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농민들의 잇따른 사망으로 검찰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도 입지가 약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검찰의 수사권 독점으로 야기된 인권유린 관행을 고치지 위해서는 수사권을 경찰과 공유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터라 경찰에게 폭행당한 홍씨의 이번 사망은 '인권 지킴이'를 자처해온 경찰에게 치명적인 악재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홍씨가 시위 도중 경찰에게 폭행당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직접적인 사인인지는 아직 모르는 만큼 당분간 부검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보이고있으나 자칫 과거의 과잉진압에 따른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1991년 명지대생 고(故) 강경대씨가 교내 시위 도중 경찰이 휘두른 진압봉에 머리를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전국 대학생들이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벌여 당시노태우 정권이 위기에 처했었다.

이후 1996년 노수석씨, 1997년 류재을씨가 시위와 관련해 숨졌으며 홍씨의 이번사망은 8년만에 처음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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