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는 입맛이 쓰다. 아니 갈수록 씁쓸해진다고 해야 맞겠다. 대학입시의 가장 큰 관문이자 마지막 승부를 가르는 정시모집 원서 접수를 앞둔 지금 이 시점이 기자로서는 가장 괴롭다.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입시의 당사자라서도 아니고, 대학에 들어갈 아이를 둬서도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객관적으로 입시판을 들여다보는 제3자의 입장인 것이 고통을 더한다.
그 시작은 아마 2001년 11월이었던 것 같다.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매일신문사가 주최한 대학입시 설명회가 열린 때였다. 2002학년도 대입 제도가 처음 적용되는 해.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새 제도에 대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이해도는 너무나 낮았다. 예비고사·본고사, 학력고사에 이은 수능시험은 어찌됐든 '수험생 한 줄 세우기'였는데, 갑작스레 2002학년도부터 여러 줄 세우기로 바뀐다고 하니 어느 줄 어디쯤에 서야 할지 길이 보일 리 없었다. 그해 수험생들이 자신들을 표현하는 말로 가장 흔하게 쓴 것이 '표본용 개구리', '실험용 생쥐'였으니 사정은 짐작이 갈 것이다.
지방 최초의 입시 설명회는 바로 그런 사정을 감안해 기획됐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흔하지 않은 행사다 보니 준비하는 입장에선 초조했다. 당일 아침엔 유난히 춥기까지 했다. "이 날씨에 누가 오겠나" 하는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웬걸, 행사 시작 1시간도 더 전부터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어느덧 1천 명만 와도 다행이다 싶은 행사에 무려 5천 명이 몰렸다. 자료집은 진작 동나고 행사장 외부에 부랴부랴 확성기까지 설치하는 난리를 치렀다.
많은 이들이 성공을 축하하던 그날 밤. 문득 입맛이 무척 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 많은 사람들을 영하의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까지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싶게 만들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세 시간 넘는 강연을 듣고도 강사들을 붙잡고 악착같이 질문을 던지게 했을까.
그리고 4년이 지난 올해까지 매일신문사는 매년 한두 차례씩 어김없이 입시 설명회를 개최했다. '올해는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고 번번이 생각했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그 간절함을 외면하긴 힘들었다. 고교 3학년까지 밤을 낮 삼아 공부한 수험생들과 뼈 빠지게 이를 뒷바라지한 학부모들에게 또 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승부가 있으니 연구하고 준비하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2002 입시에 이어 2005, 2008로 이어지는 3년짜리 입시제도 개편 시리즈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사이 입시 설명회가 유행처럼 번지다 보니 급기야 올해 서울의 한 입시기관은 토요일과 일요일 밤부터 새벽까지 입시 설명회를 하면서 상담도 해 주는 1박2일짜리 행사를 열었다. 이 무슨 참담한 일인가. 기자의 쓴 입맛이야 헹궈내면 그만이겠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그 고통은 도대체 누가 책임지는가.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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