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박물관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문화 콘텐츠의 원형으로 기능하는 박물관의 경제적 역할을 통해 살아있는 박물관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존재 의의를 모색한다.
■ 아시아 최대 규모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새로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에 인파가 몰리고 있다. 개관 초기의 '반짝 효과'만은 아닌 듯하다. 연건평 4만 평이 넘는 초대형 규모, 강도 6이상의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내진(耐震)설계, 세계 최초의 유물 내비게이션 시스템 도입 등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경복궁 내 건물에서 국립박물관으로 출발한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전쟁 등 열악한 현실 속에서 발굴 조사와 전시기능을 유지해 왔으며, '내 집 마련'을 위해 무려 7번의 이전을 거듭했다. 경주, 부여, 공주, 광주, 진주, 청주, 전주, 대구, 김해, 제주, 춘천 등지에 무려 11개의 소속 국립박물관을 거느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불행한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문화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 국가의 '집합적 기억의 총체' 역할
국제박물관협의회에 의하면 "박물관은 인류와 인류환경의 물적 증거를 연구, 교육, 향유할 목적으로 이를 수집, 보존, 조사 연구, 상호 교류, 전시 및 교육하는 비영리적이며 항구적인 기관으로서 대중에게 개방되고 사회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박물관은 수집에서 경영과 마케팅에 이르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 지역 또는 국가의 문화 교류 같은 문화적 역할, 문화 향수 기회 및 교육 콘텐츠 제공 등의 사회교육적 역할, 지역이나 국가의 이미지 향상 등의 정치적 역할,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관광과 연계되어 지역이나 국가의 경제 활성화와 같은 경제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국가문화유산의 전승과 관리이다. 박물관은 타임캡슐로서, 인류 문화와 자연에 대한 기록을 가능한 한 원형의 상태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윤리적 책임이 있다. 대중들은 박물관의 전시를 통해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환경 요인의 변화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여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을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은 단일 민족의 경우, 박물관의 전시를 통해 국가와 민족의 연속성을 설명하고, 자국의 문화를 홍보함으로써 대내적으로는 국민의 단결을 촉진하고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위상과 문화적 정체성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은 국가의 집합적인 기억과 밀접하게 상호 연결된 하나의 문화적인 제도이자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 국가 경제 회생시키는 문화 콘텐츠
박물관의 역할 가운데 최근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경제적인 역할이다. 박물관은 관람객의 유입으로 발생하는 수익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지역이나 국가 경제 회생에 기여하게 되는데 이를 '경제적 역할'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제조업이 중심이 되었거나 산업적 기반이 무너진 도시에서 박물관은 관광 산업의 콘텐츠로서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되어 새로운 경제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화 원형 콘텐츠이면서 관광 콘텐츠로서 박물관은 소장품의 전시를 통해 박물관의 재정과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박물관은 지역 공동체나 국가의 홍보 및 경제 활성화의 원동력이며, 더 나아가 직업을 창출하고 고용을 증대시킨다.
최근 국가와 지방 정부들이 '문화 마케팅'을 표방하면서 정책적으로 성장 잠재력이 있는 고부가 가치의 문화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제도의 장비와 인프라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경제적 가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경쟁력 있는 국제적 문화도시, 빌바오
문화는 관광과 더불어 도시 경쟁력의 주요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유치하여 지역 경제를 희생시킨 빌바오 구겐하임의 사례는 박물관이 '문화의 발전소'이면서 '도시 부흥의 강력한 엔진'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뉴욕에 본관을 두고 있는 솔로몬 R 구겐하임이 스페인의 빌바오에 설립된 배경은 이러하다. 1980년대 지역 경제의 중심이었던 철강과 조선 산업으로 명성을 자랑하던 빌바오는 경제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더욱이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로 10여 년간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1991년 바스크 정부와 지역 주민들은 도시 재건을 위해 "예술과 문화로 도시를 되살리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에 성공했다.
1997년 10월 세계 최고의 현대 미술관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을 개관한 이후 한 해 평균 136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했으며, 미술관과 관련된 문화 소비로 파생된 지역 경제 효과는 1년간 1천760억 원에 이르렀다. 개관 이후 1999년까지 빌바오 구겐하임이 창출한 직접적인 경제 효과는 4천300억 원이다. 이는 바스크 정부의 주요 재정 수입원이 되었으며, 이와 함께 수천 명의 고용 효과를 창출한 바 있다.
■ 살아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되려면
구겐하임 미술관의 영리 지향적인 경영 방식과 미술관의 글로벌화, 기획 전시의 대량생산에 대해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인 비판의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구겐하임이 오늘과 같은 브랜드에 대한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양질의 소장품과 참신한 전시 기획, 공격적이면서 고객 지향적인 마케팅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다른 문화 환경에서도 앞 다투어 구겐하임 미술관을 벤치마킹 하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이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될 것'을 주문했던 것처럼, 이순(耳順, 60세)을 맞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제 내실을 통해서도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나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이 외형뿐 아니라 콘텐츠 측면에서도 더욱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며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관람객 저변을 확대하고, 관람객들에게 올바른 관람 문화를 전달하여 세계적 박물관으로 도약해서 한국과 한민족을 대변하는 문화의 거울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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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굴암 등의 문화재는 엄밀한 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암석 같은 물질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품고 있다. 그 가치의 근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004학년도 경희대 수시 1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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