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끊임없는 검증'의 과정이며, 이를 통해 발전·진보한다. 특히 자연과학은 관찰과 실험 등에 근거하기 때문에 결과도 중요하지만, 검증의 과정 또한 같은 무게로 그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과정이 진실하지 못하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이번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논란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단면 또는 국민의 사회적 성격을 엿보게 된다.
먼저 애국심과 진실 규명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가슴 한가운데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황 교수를 비롯한 25명의 공동 저자로 금년도「사이언스」지에 게재된 논문 내용이 일부 조작되었으며, 줄기세포의 유무에 대한 판단은 제3의 기관에 의뢰한 검증 결과를 통해 조만간 밝혀질 예정이다. 직접적인 비교는 아니지만, 과거 관료적 권위주의 시대에는 '국익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진실 규명'보다 우선시되었다. 안보 이데올로기가 그러했으며, 지역에서 일어난 '인혁당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진실은 규명되었다. 이제 '진실'이 결여된 '국익(애국심)'은 오히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사회 지도자들은 고금을 넘어선 이러한 시대정신을 성찰하고 실천해야 한다.
둘째, CEO의 도덕성 혹은 덕(德)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회자되는 CEO의 덕목 가운데 도덕성을 강조한다. 황우석 교수는 연구사단을 이끌어가는 CEO이다. 황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목표를 함께 공유하고, 이의 수행과정에서 투명성을, 성과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연구원 상호 간의 신뢰있는 팀워크 등을 담보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황 교수에게는 이러한 점들이 부족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의사이면서 바이러스 전문가 안철수 연구소장의 '아름다운 퇴진'이 진정으로 존경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95년 연구소를 설립한 후 10년 동안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보안업계 1위의 반석에 올려놓은 안철수 소장은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핵심가치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몸소 실천한 기업가이다. 그리고 자신은 해야 할 공부를 위해 CEO를 과감히 물려주고 유학길에 오른다고 했다.
셋째, 우리 한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감성적 DNA(?) 문제이다. 물론 일부일 수 있다.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우리는 "남이 잘되면 괜히 시기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실익 없는 경쟁심리가 이번 사건의 진상을 연구팀 밖으로 노정하게 만든 요인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줄기세포 연구 결과 나타나는 공과에 대한 물질적 위신적 보상을 둘러싸고 잠재되어 있던 이해관계가 오늘의 사태를 낳은 작은 원인일 수 있다. 너무 비약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을 21세기에 재확인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성적 DNA가 복제되지 않도록 하는 바이오기술을 만들어 국민에게 확산시키거나, 스스로 백신을 맞는 데 앞장서야 되지 않을까.
우리는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그것도 21세기 초반에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두 가지 큰 사건을 만들었다. 하나는 2002년 6월에 창출한 월드컵 4강 신화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번 황우석 교수 사태이다. 공통점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축구를 알게 했고, 이를 통해 세대를 초월하는 사회통합을 이루었으며, 과학을 알게 했고, 이를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했다. 꿈과 희망을 불어 넣은 것이다. 두 사건의 차이점은 국민에게 희망과 실망을 주었으며, 밖으로는 그동안 쌓아놓은 국가 브랜드의 업(up)과 다운(down)이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는 국민과 국가는 정체되거나 퇴보한다. 황 교수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진실이,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이, 상생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한 사회통합만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을 명심하자.
김지섭(사회학박사'경북도 교육지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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