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가뭄 탓일까, 산불이 잦다. 선홍빛 불길이 악마의 혀처럼 날름날름 산을 삼키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쓰라린다. 아름다운 숲들이 저토록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다니. 누군가의 무심한 행위, 또는 심술스런 장난질에서 시작된 불티 하나가 엄청난 화(禍)의 근원이 됨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큰 갈등은 서로가 한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대처하지만,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오랜 친구며 부부들을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바꿔버리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중국 송(宋)의 정치가이자 문인인 구양수(歐陽修)의 "화(禍)와 환란은 항상 하찮고 작은 것들이 쌓인 데서 비롯된다(禍患常積於忽微)"고 한 말을 되새겨봄 직하다. 흔히들 사람은 큰 돌이 아니라 하찮게 여겼던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지기 쉽다고 한다. 큰 돌은 미리 피해가지만 작은 돌부리는 "이까짓것" 하며 무시했다가 도리어 발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이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연구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 검증 결과 줄기세포도 원천기술도 사실상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세계 최초'라는 산만 바라보고 냅다 달리다 '연구윤리'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하도 연쇄적으로 넘어지다보니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런 우화도 있다. 열 한 번이나 구애했지만 거절당한 비둘기가 있었다. 상심한 그에게 친구 참새가 물었다. "너, 눈 한 송이의 무게가 얼만지 아니?" 비둘기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별거 아니겠지, 뭐." 그러자 참새가 말했다. "어느 날 가지에 쌓이는 눈송이를 세어봤어. 정확히 874만1천952송이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었지. 그런데 그다음 한 송이가 내려앉자마자 그만 그 큰 가지가 부러지고 만 거야.' 비둘기는 번쩍 눈을 떴다. "별거 아닌 눈 한 송이가 큰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고? 아! 다시 한번 시도해봐야 겠어." 결국 비둘기는 12번째 프러포즈에 성공했다.
새해 계획에 " '별 거 아닌 것들'을 실천하기" 항목을 하나 더 첨가하면 어떨까.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거나, 적조한 친구에게 먼저 안부전화를 해본다거나, 마음을 섭섭하게 한 사람을 너그럽게 이해해 준다거나'''. 별거 아닌 작은 친절과 배려와 관용이 '나의 하루, 나의 한 해'를 어떤 색깔로 바꾸는지 눈여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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