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한 '프로크루스테스'는 메가라에서 아티카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철제 침대에 눕혀 놓고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만큼 자르고 짧으면 망치로 쳐서 늘렸다고 한다. 이를 빗대 '프로쿠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대의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이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자기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기준에 상대를 맞추다 보니 당하는 사람은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이나 정당한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400여 개 부품 1차 협력업체에 납품단가를 인하하도록 요구해 지역 협력업체들로부터 큰 반발을 사고 있다. 급격한 환율하락과 유가 상승 등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원가 절감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위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안정된 미래를 확보하고 보다 큰 과실을 서로 나누기 위해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라면 입을 댈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번 현대'기아차의 경우는 문제 해결에 있어 방법도 순서도 틀렸다는 점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케 한다. 아예 어린애 손목 비틀기나 다름없다. 협력업체의 납품가격 인하폭을 일방적으로 정해 통보하고 자신들의 고통분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여건이 어렵고 업계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세계 굴지의 대기업 체면에서는 용렬해보인다. 뒤늦게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이 임금 동결을 선언했지만 은연중 근로자들의 임금동결을 압박하는 수순으로 비치고 있다. 힘들다고 과거에 하던 대로 덜컥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협력업체의 반발은 반발대로, 기업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나빠지고 말았다.
지난해부터 많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상생하자며 연일 자리를 만들어 다짐하고 선언하고 있다. 포스코 등 일부 대기업들은 성과공유제와 구매물량확대, 공동연구개발, 기술이전, 금융지원 등 여러 분야에서 1조 원이 넘는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추진해오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협력업체와 함께 원가절감과 품질향상을 위한 혁신활동을 수행하고 그 성과를 공급사에게 보상하는 성과보상제를 도입, 보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입 1년도 안 돼 보상금만도 100억 원이 넘었다. 이 경우 과거처럼 원가절감에 의존하지 않고 협력업체의 제조'기술혁신을 지원,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신선한 느낌마저 든다.
상황이 이런 데도 비록 일부이지만 힘있는 대기업들로부터 지침을 강요당하고 혹여 불이익을 받을까봐 중소기업들이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처지는 난데없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뉘여 강제로 다리가 잘리거나 늘려진 행인과 다를 바 없다.
얼마 전 대구의 한 벤처기업 CEO와 점심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CEO는 해를 거듭할수록 기업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고민을 들어보니 지역대학 출신 직원들의 경쟁력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과 그들을 가르친 대학교수들의 위기의식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기업현장의 필요와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식대로 인재를 길러낸다'는 대학들의 안이한 문제의식에도 제대로 쓴소리 한번 못 내고 있다고 했다. 대구에서 생산활동을 해야하는 지역연고 기업인으로서 싫든 좋든 지역대학 졸업생들을 상당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다는 이야기였다.
변화를 변화로, 위기를 위기로 생각하지 않고 관행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언제 우리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이제 그 침대를 하나씩 거둬들이자. 자기 이전에 남을 먼저 배려하는 융통성과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혁신이기 때문이다.
서종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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