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스포츠처럼

스포츠는 연일 감동을, 정치 지도자들은 내리 실망을 안겨 주고 있다. 남의 작은 잘못도 용납하지 못하고 꼬집기 일쑤이던 이해찬 국무총리가 3'1절 내기 골프와 관련된 잇따른 거짓말 의혹에 휩싸여 있고,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은 성추행을 하고도 의원직을 내놓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국무총리의 으뜸 덕목이 국민 신뢰임을 감안한다면, 노심(盧心)은 의외로 쉽게 결정될 수 있다. 후안무치한 최 의원과 같은 인물이 있기에 성추행에 대한 친고죄 옵션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토리노의 남자' 안현수가 남자 3천m 계주에서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 두고 링 외곽을 차고 나가 앞서 가던 캐나다 선수들을 따라잡으며 역전할 때의 감동은 다른 종목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전북의 열일곱 소녀 김연아는 국내 101년 피겨 사상 처음으로 세계주니어대회를 석권했다. 의정부여고에 다니는 열여섯 살 소녀 김유림은 30년 만에 세계 주니어 빙속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우승을 거머잡았다.

○…월드베이스볼대회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도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고, 월드컵 축구 대표들 역시 정치판에서 불어 오는 갖가지 역겨운 냄새를 한꺼번에 날려 보냈다. 요즘 소시민들은 그나마 스포츠 스타들이 있어서 살맛이 난다.

○…지금도 사이클 종목이 있지만 과거 스포츠 경기 가운데 자전거 대회가 최고의 스포츠였던 적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유행시킨 사람은 독립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윤치호였고, 자전거대회를 최고의 스포츠로 만든 인물은 엄복동이었다. 엄복동은 자전거상회에서 일하다 1913년에 열린 전조선자전거대회에서 조선 대표로 출전, 일본인을 제치고 1등으로 골인했다.

○…엄복동의 자전거 경주법은 토리노의 3관왕 안현수와 비슷했다. 엄복동은 중간 그룹에서 달리다가 마지막 한 바퀴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엉덩이를 하늘로 추켜올린 채 빠른 발놀림으로 선두그룹을 따돌렸다. 관중들은 '올라간다'는 함성과 함께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열화와 같은 응원을 쏟아냈다. 엄복동을 누르기 위해 일본인들은 곁에서 슬쩍 미는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았지만 엄복동은 무적이었다. 게임의 법칙을 지키며 세계 정상에 오른 안현수'엄복동'김연아처럼 실력 있는 정치판 선수들, 어디 없을까.

최미화 논설위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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