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에는 백만불짜리라는 야경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번잡한 홍콩의 한쪽에는 대구처럼 곳곳에 길거리음식이 널려있다. 서너가지 메뉴 뿐인 대구와 달리 홍콩인들은 수십가지 메뉴 중에서 골라먹는다는 점이 다르다. 홍콩인들은 어떤 길거리음식을 선호할까. 대구와는 어떻게 다를까.
홍콩 침사초이에 도착한 저녁, 서둘러 호텔에 여장을 풀고 몽콕 야시장으로 향했다. 낮에 기내식을 먹은 뒤 몇 시간을 굶은 터라 식당부터 찾았다. 길거리 분식점, 노천 식당, 포장마차, 요리점까지 크기도 다양한 가게가 즐비했다. 배는 고팠지만 선뜻 가게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음식이름을 봐서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한 가게마다 20~30가지의 메뉴를 내걸고 있었는데 '육(肉)'이나 '향(香)'자가 많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한자가 아니다 보니 까막눈이나 마찬가지.
결국 한 시간을 헤매다 '죽면전가' 라는 노천 요리점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소고기면을 시켰는데 일종의 고기 완자 탕이었다. 시커먼 간장 국물에 소고기 완자와 얇게 썬 어묵이 담겨 나왔다. 면은 아주 가늘고 탱탱했다. 무척 느끼했지만 퇴근길 서민들의 단골 음식인 듯했다.
밤이 되면서 길거리 가게들의 불빛은 더욱 휘황찬란해졌다. 튀김, 만두, 꼬치구이, 어묵튀김, 잡채, 계란 등이 걸죽한 소스와 튀김 솥에 가득했다. 5달러를 내고 먹음직해 보이는 완자 꼬치 하나를 집었다. 역시 향이 강했다. 하지만 노란 봉투에 국물을 붓고 튀김을 담가 먹는 홍콩인들은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텁텁한 입안이 불편한 참에 만난 길거리 찻집은 그래서 더 반가웠다. 다시 5달러쯤을 내고 한 잔을 비우니 약차 비슷한 맛이 났다. 희한한 것은 '대나무 차'였는데 대나무를 그대로 기계에 갈아 즙을 낸 뒤 설탕을 태운 것이었다. 미지근한 차에서는 대나무 향이 우러나와 입안이 제법 상쾌했다.
빵집도 많았다. '딴탓'이라고 부르는 계란 카스타드는 밀가루에 계란 노른자를 반죽해 슈크림을 얹어 구워냈는데 그 맛이 달콤하고 고소했다. 가격도 저렴했다. 공갈빵 비슷한 것을 파는 빵집도 곳곳에서 손님을 끌고 있었다.
손수레 상인들도 대구의 그것과 비슷했다. 현지 교민에 따르면 중국 반환 뒤 이런 길거리 상인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한 상인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무뚝뚝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생수병 하나 들고 자정 넘어까지 쫄쫄 굶은 채 거리를 헤맸다. 홍콩까지 와서 도저히 편의점에서 배를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일본 분식점. 돈까스덮밥에 김치까지 돈을 내고 먹고 나니 겨우 허기를 면한 느낌이었다.
홍콩 여행을 준비중이라면 흔히 여행자 블로그 등을 통해 식당이나 음식에 대한 정보를 갖고 간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뜻밖에 만나는 길거리 음식들은 여행의 여운을 오래 가게 해줄 것 같다.
홍콩에서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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