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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장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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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영천시엔 그 흔한 영화관 하나 없다. 그나마 다행한 건 시내를 가로지르는 천변 둔치에 닷새마다 예스러운 장이 열린다는 점이다. 요즘 보기 드문 이칠(二七)장인데, 그런 날이면 약속이나 한 듯 각지에서 모여드는 장꾼들로 넓은 장터는 제법 그럴싸한 활기를 머금는다.

오뉴월은 장이 서기에 가장 적당한 달이다. 다들 닮은 꼴로 늙어 가는 장꾼들이 저마다 장사 밑천들을 낡은 트럭에 싣고 온다. 굳이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그들이 가져온 물건들은 그들의 삶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닭이며 오리·거위 등의 가금류에서 토끼나 염소·강아지며 고양이 같은 애완용 동물들까지 두루 있다. 어디 그뿐이랴. 봄이면 갖가지 유실수 묘목이며 모종들이 거래되고, 모양 좋은 분재며 아름다운 화초가 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인근 농가 아낙이 용돈이나 벌어 쓸까 보따리에 싸온 산나물이 보이고, 우엉이나 연근·고구마와 배추·감자 등속의 제철 농산물도 흔전하다. 절로 구획이 된 장터 한구석에는 언뜻 봐도 지나치게 색감이 화려한 중국제 치마와 블라우스·속치마나 브래지어 등의 여성용 의류도 부끄럼 없이 노천바람을 맞으며 철제 행어에 내걸려 있기도 한다.

거친 세상살이로 인해 더욱 호방해진 장꾼들은 가져온 물품들을 땅바닥에 펼쳐놓고 제법 입심 좋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른다. 곧 한푼이라도 깎으려는 손님과 셈이 빤한 장꾼의 흥정이 연극처럼 벌어진다.

그건 슈퍼나 마트에서 찾을 수 없는, 장터만의 독특한 즐거움이다. 몇 번의 신경전 끝에 짐짓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 엄살을 떨며 값을 깎아준 장사치는 곧장 속보이는 웃음을 안면 주름 속에 환하게 떠올린다.

해가 중천에 오를 즈음이면 손님들의 걸음도 뜸해진다. 그 즈음이면 어젯밤 숙취로 해장술 생각이 간절해진 장꾼들을 위한 값싼 포장집도 한둘 장터 가장자리에 들어서게 마련이다. 허름한 그곳에서 장꾼들은 지난번 장터에서 아쉽게 헤어진 장꾼을 만나 못다 한 얘기를 주고받거나 오고 가던 장삿길에 어쩌다 마음에 드는 과부 장꾼에게 선심 쓰듯 한턱을 쓰기도 한다.

때를 넘겨 배가 출출해진 촌로(村老)들이 친구의 주머니를 넘보며 기웃거리는 것도 이맘때다. 이내 허름한 포장집 안은 잔칫집 마당처럼 시끌벅적해진다. 듣기에 낯뜨거운 농담이 오가고, 처음 보는 사이에도 무람없이 세상 사는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할 일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대거나, 사지도 않을 물건값을 물어보며 뜨내기 장꾼들이 지어내는 삶의 허접하고 부산스런 활기를 지켜보기에 지친 나는, 아픈 다리도 쉴 겸 못 이긴 채 포장집을 찾아든다. 그리고 인심 넉넉한 주모가 내어놓은 낮술 한 잔에 취해 장꾼들의 농담에 객쩍게 끼어들기도 하며 흥겨운 장터의 분위기를 은근히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지 장터의 활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더러는 장사를 이어받을 젊은 세대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리고, 곳곳에 생겨난 대형 마트 탓에 없던 경기가 더욱 나빠졌다고도 했다.

언젠가 장이 사라진 다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알 수 있으리라. 장터란 외로운 자들이 저마다 하나씩 색색의 등불을 들고 모여드는 교류와 축제의 한마당이었음을. 또한 장꾼들이 판 게 싸구려 물건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지는 인정이고 전통이며, 애달픈 소통의 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박희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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