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는 최소 서기 전 3500여 년 경에 존재했다고 한다. 바퀴의 발명과 실생활에의 도입은 인류 문명에서의 이송과 운송의 혁명을 뜻한다.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원거리 간의 물자 교류와 사람간의 왕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만큼 삶이 풍요해졌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이송과 운송은 주로 강자에서 약자에게로 이루어졌다. 거리와 지역을 극복한 자본과 권력집중이 가능해 진 것이다. 나아가 가질수록 더 가질려는 자본과 권력의 속성은 바퀴의 속도와 기동성을 필요로 했다.
바퀴는 움직이기 위해 존재한다. 머물러 있는 바퀴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바퀴에 필요한 넓고 평탄한 길이 자꾸 건설되었다. 바퀴와 도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정복과 수탈의 제국주의 문명을 이끌어 왔다.
가장 빠른 기동성을 가진 민족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정복지에는 제일 먼저 길을 닦았다. 길이 놓여 질 때마다 개인과 개인, 이웃과 이웃, 민족과 민족이 갈라섰다. 그래서 '말죽거리 잔혹사'로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시인인 유하는 '길은 질주하는 바퀴들에 오랫동안 단련되었다/ 바퀴는 길을 만들고 바퀴의 방법과 사고로 길을 길들였다/ 도시와 국가로 향하는 감각의 고속도로여 / 나를 이끌었던 상상력의 바퀴들아 멈추어라/ 그리고 보이는 모든 길에서 이륙하라'고 외쳤다.
5.31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전국적으로 너나없이 경쟁적으로 개발과 성장공약을 앞세운 후보가 당선되었다. 오죽했으면 어느 시민운동가는 선거후 방송인터뷰에서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공약을 모두 지킨다면 지역의 자연환경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했을까.
이번 선거에서 쟁점이 된 유일한 지역 현안문제는 앞산터널사업이다. 선거에 출마했던 시장 후보들은 당선자를 제외하고는 이구동성으로 재검토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지속가능한 도시 계획을 위한 중대한 선택의 정점에 앞산터널사업이 자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택의 몫은 당선자에게로 넘어왔다. 대구시장 당선자의 말처럼 앞산 정상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길은 혈관처럼 나 있다. 도시·농촌·평지·심산야곡·땅 위·땅 밑 심지어 공중에도 길은 거미줄처럼 엉켜 나 있다.
길 위를 잠시도 쉴 틈 없이 꾸물꾸물 움직이는 수많은 자동차들의 모습은 마치 블랙홀로 향하는 일벌레의 행렬을 연상시킨다. 인간의 상상력은 바퀴를 창조하였지만, 한편 그 상상력은 바퀴에 길들여진 길을 따라 분열과 파괴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보이는 모든 길에서 이륙해야 될 때다. 그렇지 않고는 바퀴와 길의 문명으로 갈라섰던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참 모습으로 만나기는 불가능하다. 천성산·새만금과 마찬가지로 앞산터널 논란의 본질은 참여·자치·생태·분권 이념이 작동해야 할 2006년 사회와 이 사업이 입안된 1987년, 개발과 성장만이 미덕이던 사회 간의 가치 충돌이다.
앞산을 두고 대구시민의 10분의 1인 25만 4천배를 이어가기로 한 시민들이 13만 배나 절을 했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지역 사회의 공공선을 달성하고자 하는 진솔한 퍼포먼스다. 사리사욕·집단이기·당리당략을 떠나 모처럼 지역사회가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언론에서 이 논란에 더욱 불을 지필 일이다.
문창식(대구환경연합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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