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감동의 그라운드) 지단과 피구의 각별한 '우정'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에서 부활한 '아트 사커'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지네딘 지단이 자신의 축구 인생을 월드컵 결승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즐거움이다.

이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긴 했지만 사실 지단의 페널티킥 성공율은 그동안 75%로 동료 선수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었다. 그러나 침착하게 골문 좌측 상단으로 쏘아올린 이 골은 방향을 읽은 골키퍼가 몸을 날려도 어쩔수 없을 만큼 정교한 것이었다.

이 골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혼자 2골을 터뜨리며 프랑스에 사상 첫 월드컵 트로피를 안겨주었던 지단은 8년 전 영광의 재현을 꿈꿀 수 있게 됐다. 만약 지단의 꿈이 실현된다면 프랑스는 '늙은 수닭'이 아닌 '행운을 가져다주는 수닭'이 될 것이고 지단 자신은 펠레, 마라도나, 베켄바워와 같은 반열에 서는 영웅으로 축구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다.

큰 경기에 약하다는 명예롭지 못한 평가에 시달려온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앙리에게 쏠리는 시선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경기가 거듭되면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그의 재치와 발 재간이 빚어내는 플레이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이날 포르투갈이 보여준 경기 내용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두 차례 마니시가 날린 시원한 슈팅이나 피구의 골문을 위협하는 슈팅 등은 긴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상대 진영을 뒤흔드는 질풍같은 드리블, 빠르고 예리한 각도의 크로스,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터뜨리는 강력한 슈팅 등은 그의 전매특허인데 아마도 더 이상 피구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아쉬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경기가 끝난 후 땀에 절은 유니폼을 서로 바꿔입은 지단과 피구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남겼다. '지구방위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최고의 대우를 받았던 서른넷 동갑내기 그들이 보여준 우정은 각별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우정의 포옹을 지켜보는 그 대목이 월드컵의 본질이고 우리가 축구를 세계인의 스포츠로 공인하며 순수하게 빠져들게 하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에도 어느 곳에선 미사일이 발사되고 다른 곳에선 생명이 사라지고 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만 우리는 그런 뭉클함으로 축구를 지켜본다.

권순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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