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민선 4기 지도자들에게

민선 지방자치 4기가 시작됐다. 단체장과 지방의원 모두 일하겠다고 나왔으니 일꾼이고 앞장서 가야 하니 지도자다. 4년의 출발점에서 기분과 소회가 남다를 것이다. 개인적 영달의 성취감과 함께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앞장서 헌신하겠다는 의욕이 마땅히 앞설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다산의 목민심서라도 한 번 통독하고 출근한 사람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망국적인 지역구도 덕분에 좋은 자리에 너무 쉽게 오른 사람들이 많아서 표를 찍어 준 주민들도 내심 걱정이 적지 않다. 자칫 제 잘나서 당선된 줄 알거나, 공천을 준 높은 쪽 사람 은혜만 알고 주민을 가벼이 여기거나 깔보지나 않을까, 비민주'권위주의 시대 관료들 처럼 행세할 소지가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대는 달라졌다. 지역구도, 파행적 정치 행태 등 몇 가지 고질병들을 제외하고는 확실한 민주 자율 시대다. 그래서 목민심서가 참고서는 될 수 있어도 교과서는 되지 못하는 시대다. 노파심에서 뻔한 말이지만 몇 가지 고언을 드린다.

겸손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기 바란다. 주민자치를 이르는 지방자치는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주목적이 있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주민을 위한 성실한 일꾼, 선량한 대변자여야 하지 주민에 군림하는 불량한 상전이어서는 안 된다. 인격과 자질 면에서 경쟁 후보보다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순전히 공천 덕분에 당선된 사람이 오히려 더 오만불손한 경우가 있다. 자질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게 마련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법도 겸손이다.

취임 초기 자치단체 민원실은 아주 친절해진다. 지시에 의한 가식적인 것이라도 주민들은 기쁘다. 하지만 주민을 받드는 일도 시일이 갈수록 시들해진다. 그것은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권력의 맛을 즐기며 무사안일에 빠져 드는 속도와 거의 정비례한다. 달리 말하면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주변 공무원과 관변 업자, 친분을 가장한 각종 브로커들의 아부와 아첨에 흥겨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민이 받는 행정 서비스의 질은 불량해지는 것이다.

부패를 경계해야 한다. 단체장은 대통령이 불러도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그만이다. 지방의원 또한 매일 먹고 논들 나무랄 사람 별로 없다. 그만큼 편하고 막강하다. 그런 권력을 주민을 위해 써야지 부패와 즐기는 데 써서야 가렴주구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던 옛날 사악한 원님과 아전이나 다를 바 없다 할 것이다.

혹시라도 당선되기 전에 발렌타인 등 고급 양주를 좋아했던 사람은 양주부터 끊는 것이 옳다. 자기 돈으로 사서 집에서 혼자 마신 것이 아니라면 그동안 마신 고급 양주 무게만큼 부패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선량한 연유든 불가피한 이유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 비싼 양주를 소주 마시듯 주거니 받거니 하는 데서 우의가 싹트는 것이 아니라 부패와 음모가 싹틀 뿐이다.

조직과 인사를 공부해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진리다. 사람 사는 동네 당연히 사람이 중심이고, 사람이 일하고, 사람이 일 내는 것이다. 선거를 겪었기에 이미 통달했다고, 공직이나 기업 출신이어서 자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많이 다를 것이다. 전례와 경험은 참고 사항일 뿐이다, 독립적인 정치인의 입장에서 공조직과 인사에 대한 공부를 치열하게 해야 할 것이다.

흔히들 자치단체를 기업처럼 운영하고 감시할 수 있다고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법과 제도를 개선한들 기업처럼 될 수 없는 것이 행정의 특징이자 한국적인 풍토다. 그런 부분까지 감안해서 일해야 한다. 기성 조직과 인맥이 최상이 아니라면 안주해선 안 된다. 적당하게 동맥경화에 걸린 조직, 그렇게 만든 사람들, 그런 흐름을 그대로 안고 가는 기성 제도와 인맥에 안주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런 통속에서 아무리 궁리하고 연구한들 답이 나오지 않을 뿐더러 문제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한다면, 차기 지방선거는 누워 떡 먹기식 당선을 보장하는 정당 공천이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고, 이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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