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 학교 만들기' 윤은주 대구가톨릭대 교수

"지난 1년 6개월은 우리나라 교육도 바뀔 수 있다는 자신감,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 어린 학생들의 잠재력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윤은주(33) 대구가톨릭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공교육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믿음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윤 교수는 이번 남대구초등학교 '좋은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주 대상인 1학년 교실을 전담하기 전인 지난 해 1년 동안 경남 함안초등학교에서 같은 내용의 실험을 선행해 놀랄만한 성과를 목격한 산 증인이었다.

"왕복 4시간씩 고속도로를 타고 함안으로 오가는 길은 쉽지 않았지만, 달라지는 교실의 모습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어요."

그는 그 곳에서 '공교육 내에서의 대안교육 모델'이라는 연구를 수행했다. 함안초교는 전형적인 시골 농촌학교로 한 반이 20명 남짓인데다 학부모들의 관심도 비교적 적고 결손가정 자녀도 많은 곳이어서 연구대상으로 그만이었다.

사실 다른 공립학교에 이번 연구수행을 먼저 제안했다가 '그런다고 월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잖느냐.'는 교사의 핀잔을 받고 적잖은 실망감에 빠졌던 참이었다.

윤 교수는 그래서 기꺼이 연구 조력자로 나서 준 함안초교 1학년 담임교사가 더욱 존경스럽다고 했다. 두 사람은 연구기간 내내 교과목을 재구성하고 지도방향을 수정했다. 2시간씩 장거리 통화를 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함안초교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글자를 쓸 줄 모르는 한 아이가 있었어요. 행색도 아주 남루하고 소심해서 반 아이들이 친하기를 꺼렸죠. 그런데 반 친구들이 '몸 만들기' 수업 때 수수깡으로 갈비뼈를 만들다가 자꾸 부러뜨리는 걸 보고 뜻밖의 아이디어를 내는 거예요. 수수깡 안에 철사를 넣으면 아무리 구부려도 부러지지 않는다는 거죠. 저뿐 아니라 반 전체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 그 학생은 '아이디어 왕'으로 불렸고 더 이상 주눅들지 않게 됐다. 오히려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책에 적어 내려면 글자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글자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2학년에 올라가서 전통적인 수업을 받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주입식 교육에 젖지 않았다. "그림자 수업 때였는데, 햇빛이 아니라 불빛에 비춰도 그림자가 생기는지 실험을 하자고 선생님을 졸랐다고 해요.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가 은연중에 몸에 뱄다는 증거지요."

윤 교수는 경북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5년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유아교육 박사과정을 전공했다. "교육이론이 가장 잘 실천되는 곳이 유아교육이거든요. 입시와도 거리가 멀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유치원 교육은 전 세계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우수합니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 선뜻 나서준 남대구초교 1학년 담임교사들이 더 훌륭하다고 추켜 세웠다. "일반 행정업무까지 하고 나면 오후 9시, 10시나 돼야 퇴근하셨지만 힘들다는 말 대신 '고맙다'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하십니다. 이런 분들만 계시면 공교육 정상화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죠."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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