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모두가 패배자"…'포스코 사태'무엇을 남겼나?

'모두 패배자이고 상처만 깊다.'

포스코 본사 사옥 점거농성 9일만인 21일 새벽,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견디지 못해 자진해산이라는 방법으로 백기를 들고 나온 포항지역건설노조는 이번 분규를 통해 얻은 것은 없고 조직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노사분규때와 마찬가지로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투쟁일변도의 강성 노동운동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이번 포항사태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게 노동계 주변의 분석이다.

◇명분없는 투쟁은 실패 불러=노조가 자신들의 사용자인 전문건설 업체가 아닌 법적 제3자인 포스코를 겨냥한 것 부터가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달 30일 총파업에 들어간 노조는 사용자인 건문건설 업체 대표들과 15차례 협상을 가졌으나 토요일 유급휴무 등 핵심쟁점이 합의되지 않자 포스코를 협상의 당사자로 지목했다. 이지경 위원장 등 집행부는 13일 포스코 본사점거가 우발적 사건이었다고 해놓고도 농성을 장기화했고 그 이전에는 포항제철소 정문을 봉쇄하고 포스코 직원들까지 검문하는 등 불법행위를 해 여론이 등을 돌리게 하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무리한 요구에 따른 무리한 싸움=노조측이 내건 요구안 가운데 토요유급제를 포함한 완전한 주5일 근무제는 우리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시기상조라는게 대체적 여론이다. 또 외국인 고용금지는 법적인 사항인데도 이의 수용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일단 파업으로 업무를 중단시켜놓고 협상하자는 무리한 투쟁전략은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됐다. 노조는 또 울산 등 외지 노동자까지 불러들여 포항을 투쟁의 장으로 만드는 반(反) 지역적인 투쟁방법으로 더욱 궁지에 몰렸다. 정당한 논리를 통해 여론부터 설득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방법과 시기도 나빴다=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노조의 투쟁 시기와 방법도 적절치 못했다. 지도부는 태풍과 폭우로 전국이 폐허가 됐는데도 포스코 본사에서 강경투쟁방침을 고수한데다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계가 연쇄적으로 파업에 들어가, 노동계가 국가경제와 서민경제를 한꺼번에 위기로 몰아놓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건설노조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이는 앞으로 노동계가 업종별, 지역별로 연대투쟁하는 것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는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낳고 있다. 특히 지하철·철도노조와 KTX여승무원 노조 등이 지난해와 올해 노사간 내부 문제를 사회이슈화를 통해 풀려다 실패했는데도 건설노조는 이를 답습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래도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이지경 위원장을 비롯한 건설노조 지도부는 모두 경찰에 연행돼 사법처리를 면키 어렵게 됐다. 또 포스코는 지도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등을 제기한다는 방침을 이미 밝힌바 있다. 그러나 건설 노사간 임단협 협상은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 지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조집행부가 재건되거나 최소한 비상대책위라도 구성해야 하는데 이같은 조직의 부분정비까지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우선 귀가한 조합원들은 내주초부터 현장에 복귀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임시집행부를 구성한 뒤 협상이 재개되겠지만 핵심쟁점이 전혀 타결되지 않은데다 사측은 토요유급 휴무제 등 핵심사안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분규재현 가능성은 남아 있는 셈이다.

또 올해 노동운동 및 노사분규의 선봉에 섰던 포항지역 건설노조가 실리는 물론 명분도 챙기지 못하고 철저하게 패배하면서 현재 파업중인 현대차노조 등 완성자 업계 노조로서도 건설노조의 완패가 전략수정의 큰 요인이 될 전망이다.

포항 최윤채·박정출·이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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