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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교과서의 글, 선생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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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초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고산자 김정호의 전기문 내용을. 황해도 두메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혼자 힘으로 정확한 지도를 만들겠다고, 조선 팔도를 세 번이나 돌고 백두산을 일곱 차례나 오르며 대동여지도와 그 판목까지 완성했으나, 관리들에게 나라 사정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이라 오해를 받아 옥에 갇혔을 뿐 아니라 애써 만든 판목까지도 불살리고 말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 전기문은, 해방직후부터 지난 50여 년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게재되어 왔었지요. 그런데 최근, 대동여지도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대작업에 매달렸던 이우형이라는 분에 의해, 이 글의 내용이 일제의 식민사관 교육의 잔재에 의해 완전히 왜곡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김정호는 조선팔도를 세 번이나 돌아다니지도,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오르지도, 옥에 갖히지도 않았으며, 불살라졌다는 판목도 1995년에 발견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역사적으로 고증되어 1997년도에 간행된 5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는 김정호의 진짜 이야기가 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우형씨의 토로에 의하면, 새로 발견하여 정리한 정확한 사료들을 손에 들고서도 자꾸만 그 옛날 초등학교 교실에서 읽었던 교과서의 글과, 침을 튀겨가며 이 글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가 떠올라 '그래도 김정호는 전국을 답사했을 거야' '옥에 갇혀 숨진 게 맞을 거야' '목판은 불탔을 거야'라는 회의의 깊은 수렁에 생각의 발목이 빠져들어 매우 곤혼스러웠답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 읽고 배운 글은 생각의 원초적 창고 벽에 상형문자로 각인되어 삶의 장면 장면마다 메아리로 되살아날 공산이 큽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일상적으로 던지는 단순한 발화들도 학생들에게는 삶의 원리로 가슴에 새겨져 생애의 순간 순간마다 큰 목소리로 재생될 수 있습니다.

1학기가 끝났습니다.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읽고 쓰며 배운 교과서의 글들이 정말 온당한 내용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학생들의 의식에 흘러들어갔기를 희망해야겠지요. 그리고 긴 여름방학 열차에 탑승할 수 있는 차표처럼, 학생들이 받아들고 간 통지표에도 그들의 성장에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될 선생님의 말씀들이 적혀 있다면, 이 또한 건강한 미래의 훌륭한 기초공사가 되는 셈이지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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