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아동문학의 자존심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민족의 장래는 어린이에게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이 땅의 아동문학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던 아동문학의 선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문학가 창주(滄洲) 이응창(李應昌·1906~1973)은 대구 원화여고 초대 교장을 지낸 교육자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독립운동가 우재(又齋) 이시영(李始榮)의 외아들로, 역시 독립운동을 했던 동암(東庵) 서상일(徐相日)의 사위이기도 하다.
1957년 3월 이응창은 김성도·김진태·윤운강·여영택·이민영·윤혜승·서월파·신송민·박인술·서광민·정휘창 등과 함께 '대구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동인지(제1집 '달뜨는 마을')를 발간하면서 대구 아동문학의 뿌리를 다졌다.
이것이 한국문단에서 대구 아동문학의 위상을 드높인 모체가 된 것이다. 이응창은 그 중추적인 역할을 한 문인이었다. 그가 몸담았던 당시 원화여고 교장실은 한국 아동문학의 산실이나 다름없었다.
이응창은 또 71년 수상했던 경북문화상 상금으로 자신의 호를 딴 '창주 아동문학상'을 제정하면서 신인발굴을 통한 아동문학의 저변 확대에 진력해 대구문단을 더욱 기름지게 가꾸었다. 김상삼·권영세·심후섭·김형경 등 한국 아동문학계의 중진으로 성장한 향토의 아동문학가들이 창주문학상 출신이다.
이응창은 전형적인 한국의 선비형 교육자였다. 60년대 포항 송도해수욕장에서 김원중 시인이 이응창 교장을 우연히 만났다. 함께 온 칡넝쿨 동인의 박곤걸·서영수·장윤익 등과 함께 인사를 하러 오겠다고 했더니, 자신의 텐트를 가리키며 10분 후에 오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 네 사람이 텐트 안으로 들어서니 교장 선생은 양말까지 신은 정장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물론 김원중 시인 일행은 모두 수영복 팬티 차림이었다. '죽순' 동인이기도 했던 창주는 일제강점기부터 프린트판 동시집을 내며 문학활동을 했고 시집과 산문집도 여러 권 남겼다.
그는 아름다움을 기리고 가꾸는 고운 정과 슬기를 지닌 아동문학가였으며,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을 만큼 겨레의 아들딸들을 지성으로 길러낸 교육자였다.
아동문학가 정휘창(78)은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뜻이 높아 한글운동에 앞장섰고, 대구 아동문단의 지도자로 많은 후배를 가꿨다."며 "양심의 등불로 교육계를 밝힌 맑고 곧은 선비였다."고 회고했다.
'빛나는 하늘 아래/ 꽃잎처럼 피어나는/ 얼굴들을 보면/ 근심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창주 이응창은 가고 없지만, 원화여고 교정에 선 '스승의 길'이란 시비와 58년 달성공원에 건립한 '어린이 헌장비'가 문인이자 교육자였던 그의 원숙한 향기를 전하고 있다.
'따따따 따따따 주먹손으로/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우리들은 어린 음악대/ 동네 안에 제일 가지요.' 문학적인 재능과 음악적인 소질을 겸비했던 김성도(金聖道·1914~1986)는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노래 '어린 음악대'의 노랫말과 곡을 지은 인물이다.
술을 좋아하고 성품이 호방했던 그는 어린이들이 읽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 '안데르센 전집'을 번역해 국내에 처음으로 안데르센 동화를 소개한 아동문학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동요시인, 동화작가, 아동문학번역가, 동요작곡가 등 다양한 별칭이 뒤따른다.
65년 제4대 예총 경북지회장을 지낸 그는 늘 온화한 표정에 깊고 폭넓은 사고를 지닌 대구아동문학회의 창립 멤버였다. 그의 모교인 하양초등학교 숲에는 지난 88년 경산문학회(회장 김윤식)가 세운 '김성도 노래비'가 한여름 매미 소리처럼 어린 음악대를 열창하고 있다.
아동문학가 박인술(85·朴仁述)은 애주가였다. '왜 술을 마시느냐고/ 묻지를 말게나/ 날마다 하늘이 낮아지고/ 자리가 비좁아서/ 높게 한 번 날아 보려고/ 술을 마시네/…/ 위선이 위선을 팔아먹고/ 가짜가 진짜를/ 에누리하는 거리에서/ 취중에 헛소리라도/ 말 같은 말이 그리워/ 마시는 거라네.'
이렇게 '왜 술을 마시느냐고'란 시까지 썼던 그는 옥이집과 가보세의 단골로 반세기의 주력만큼이나 많은 일화를 남겼다. 술자리에서 웬만한 이야기는 다 받아들였으나 정 참지 못할 일에는 "씨러배 자식들"이라며 한마디씩 던졌고, 술에 취하면 "애인에게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술을 즐긴다.
동화작가 유여촌(柳麗村·1912~1981)은 50세가 넘어 문단에 나왔다. 지순하고 성실했던 유여촌은 평소 아동문학의 교육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아동문학은 향기높은 예술성을 추구하되 어린이를 올바로 갈 수 있게 하는 거울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웃는 표정마저 소년의 모습이었던 그는 70년대 초 같은 문단의 지각생인 김녹촌과 작가 윤장근 등과 어울려 대봉동 뒷길의 '골목집'을 자주 찾아 넉넉히 술잔을 주고받았다.
작가 윤장근 씨는 "유여촌·김녹촌을 만나면서 아동문학이 갖는 서정세계에 흠뻑 젖어들 수 있었다."며,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정을 나누던 대봉동과 남산동 주점의 풍경들을 떠올렸다. 대구아동문학회가 돛을 단 지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숱한 문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바람을 그리는 연처럼….
그러나 대구 아동문학회 회원으로 각종 문학상과 문화상을 수상하면서 대구 아동문학이 한국 아동문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이응창·김성도·유여촌·이재철·윤사섭·신현득·강준영·노원호·이오덕·김동극·하청호·김녹촌·최춘해·김종상·김재수 등의 이름을 대구문단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끝.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주진우, 김민석 해명 하나하나 반박…"돈에 결벽? 피식 웃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