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만타로라는 언어학자가 유물사관의 관점에서 세계의 언어 유형을 사용 지역이 매우 제한된 농경민형과 사용 지역이 광활한 유목민형으로 구분하였다. 중세 봉건시대에는 라틴어가 유목민형 언어였다면 20세기 이후 자본주의 시대로 들어와서는 영어나 스페인어·일본어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소통될 수 있는 유목민형 언어였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동북아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던 한반도의 우리 말과 글이 한류 열풍과 함께 갑자기 급부상하여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고요한 동방의 등불인 나라, 한국의 말과 글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열풍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 참 재미있는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시절 농경민형 언어였던 한국어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유목민형 언어로 바뀐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 민족은 '태양'과 '달'을 숭상하는 민족계열이었다. 이러한 민족 문화의 원류는 주자학이 들어온 이후에는 '이기' 철학의 기반을 낳게 되고 또 이러한 이원적 사유 방식에 익숙해 있던 우리 민족은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마침내 IT 강국으로서 문화 동반자 공동체를 주도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한국어가 국경을 뛰어넘는 한반도 공동체(물리적 영토가 아닌 virtual territory)의 꿈을 주도하는 나라의 언어라는 셈이다. 현재 한국어를 사용하는 전 세계 인구가 우리나라의 국가 경제력 순위와 비슷하다. 곧 우리나라는 세계 12위권의 언어 강국인 동시에 경제 강국이다.
통신과 물류 교류의 폭과 물량이 비교적 적었던 지난 세기는 '미시적 지역주의(micro-regionalism)' 사회였지만, 이제는 민족이나 국가라는 경계를 뛰어넘는 폭넓은 문화 교류가 전개될 거시적 지역주의 시대로 이미 진입하였다.
곧 한국이 떠오르는 나라이며, 한국어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말이다. 이제 한국어를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2018년쯤 중국의 국민 소득이 4천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약 10년 이후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동북아의 격동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 것인가? 전통적인 우방 이외에 새롭게 교류하고 함께 갈 우방을 만들어가야 한다.
최근 한류가 문화 우방을 만드는 매우 주요한 인자가 되었다. 쌍방 문화 교류라는 측면에서 한국어의 씨앗을 뿌려야 할 것이다. 영화나 무대 공연 예술 등의 대중에 대한 파급 효과는 매우 크다.
한류 열풍의 매체가 이러한 대중적 장르만이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이 그 대상이 되기 때문에 문화부에서는 100대 한류 문화를 지정하여 이를 보급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꾸리고 있다. 그러나 한글(한국어)을 김치·한복·한지 등과 같은 문화 유산과 병렬적인 대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분명 한글은 한류의 핵이며 한류 확산의 주요한 매체임을 읽어야 한다. 특히 중국 동북 3성과 중앙아시아와 몽골로 연결되는 동북아 지역을 새로운 미래의 파트너로 삼기 위해 한류 파급은 물론이려니와 한국어 보급을 위한 특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50년대 전후 시기에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에서 설립한 교육 기관을 통하여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되었다면 이젠 우리가 아시아 저개발 지역에 문화학교를 설립하여 보답을 할 차례이다. 또한 이 학교를 통해 한국어는 물론이려니와 한류 문화의 열풍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면 이에 따른 경제적인 유발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와 함께 민간 기업에서는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기 위해 한국어 보급이라는 과제를 한시라도 늦출 수 없는 국가적 주요 과제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는 국가 경영 전략을 설계하지 않는 국가와 기업은 내일이 없다.
민족과 국경을 뛰어넘어 내일의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준비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21세기 신유목민이다. 분명 내일의 큰 희망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함께 희망찬 미래로 향해 달려가자.
이상규(국립국어원장)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남아공 대통령·호주 총리와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