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과시형 외제차' 對 '신념형 소형차'

"폼 나잖아요!"

지난 16일 외제 승용차 소유현황(20일자 1,3면)을 취재하다 만난 20대 후반 개인 사업가. 그는 외제 승용차를 새로 구입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 세대들은 남 눈치를 보지 않아요. 외제차 타면 대우가 달라져요."

그의 말을 그냥 흘러 듣기에는 요즘 세태가 심상치 않다. 서울 강남의 나이트클럽에는 자동차 등급별로 주차공간이 따로 있고 고급 음식점, 호텔에서도 손님의 차 배기량에 따라 대우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자동차=신분'이라는 등식이 뜬금없는 소리만은 아닌 모양이다.

대구 외제차 매장에서 만난 고객들도 구입 이유를 물으면 '안전성 때문'이라고 했지만 '성공의 척도' '과시용' 등도 함께 꼽았다.

이런 풍토와는 달리 소형차를 고집하는 재계 인사가 있어 눈길을 끈다. 권영호(66) 인터불고그룹 회장이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아예 승용차가 없었으나 최근에 중고 프라이드를 구입했다. 스페인에서 무역업 등으로 엄청난 재력을 쌓은 권 회장은 지금도 기사 없이 손수 운전대를 잡고 있다.

권 회장은 지인들에게 "고유가 시대에 내 자신만이라도 솔선수범 해야겠다는 생각에 소형차를 고집하고 있다."고 털어놓곤 한다.

그의 소형차 탓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했다가 소형차를 손수 운전해 들어오는 권 회장의 모습을 수상쩍게 여긴 경비원이 가로막은 일도 있었다.

권 회장과 사돈지간인 인주철 보훈병원장은 사석에서 "그에게 안전을 위해 큰 차로 바꿔야 하지 않느냐고 권유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권 회장의 자동차는 비록 작지만 그가 지키는 신념의 무게 만큼은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임상준 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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