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 노트)민의 저버린 정계개편

요즘 정계개편 정국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여당이 공공연히 정계개편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는 정계개편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당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하지 않는다는 등 비난여론을 의식,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 왔던 게 상궤(常軌)였는데 열린우리당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올 연말쯤 정계개편에 본격 나서겠다는 입장을 공식회의를 통해 대외적으로 공언해 버렸다. 벌써 당내에서는 정계개편 방법론을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고, 각 세력별로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는 상황까지 와 있다.

이와 관련, 한 당직자는 "과거 정부에서는 정계개편이 당 지도부의 의지에 따라 하향식으로 추진됐기에 비난 여론이 뒤따랐지만 지금은 당원들의 뜻을 모아 상향식으로 하려 하기 때문에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정계개편도 하향식이면 나쁘지만 상향식이면 좋다는 '기발한' 논리가 동원된 셈이나 어느 쪽이 됐든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의를 거스리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야당들도 이상하다. 여당의 정계개편을 비난·저지해야 할 처지일텐데 민주당 경우, 오히려 자신들 주도로 추진해나가겠다는 등 군불을 때고 있다. 야당을 축으로 여당을 흡수하는 식의 '이례적인' 정계개편을 도모하고 있는 셈. 구 여당에 의한 여권 재편으로 볼 수도 있어 엄밀한 의미의 야당발(發) 정계개편은 아닐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여당발 정계개편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정계개편을 거세게 비난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쏠린 분위기다. 정계개편을 저지하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여당에서 하는 것을 지켜보고 보수대연합 등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여당의 정계개편은 비난하면서도 정책과 이념 위주로 정치권을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민주당을 망라, 정책 마인드 있는 진보적인 인사들과 함께 하겠다는 것. 정계개편 정국에 민의가 떠밀려 나는 것 같아 씁쓰레하기만 하다.

서봉대기자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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