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조기섭 作 '갈대'

갈대

조기섭

달이 뜨는

언덕에서

흰 머리를 설레이고 있었습니다.

모진 세월에 바래인

순백(純白)의 머리칼을

조용히 빗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운 이름들

이제는 소원히

영(嶺)을 넘고,

아무 것도 소망할 수 없는

잎 다 진 계절의

빈 언덕길.

세월에 바래인

고달픈 영혼 하나

나즉히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만추(晩秋), '달이 뜨는 언덕에서 흰 머리를 설레이는' 갈대를 보면 문득 장년을 넘어 이제 바야흐로 노년을 맞는 한 분을 떠올립니다. 그분에게도 열정으로 불태우던 청춘의 시절, 온 가슴 가득 그리움 안고 꿈을 좇아 방황하던 한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진실된 삶을 찾아 고뇌하던 중년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숨가쁜 인생살이를 뒤안길로 흘려보내고 '순백(純白)의 머리칼을/ 조용히 빗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서 있는 배경조차도 '아무 것도 소망할 수 없는/ 잎 다 진 계절의/ 빈 언덕길'입니다.

그분은 허무를 통해 삶의 진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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