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효숙 파문 일단락..꼬인 정국 풀릴까

野 인사압박 강화, 사학법 등 난관 여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7일 전격적으로 전효숙(全孝淑)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철회했다. 정국경색의 한복판에 자리잡아 왔던 '전효숙 뇌관'을 드러낸 셈이다.

형식은 지명철회지만, 내용은 사실상 야권의 공세에 밀린 여권이 '백기투항'을 한 모양새다.

열린우리당 노웅래(盧雄來) 공보부대표는 공식 브리핑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었다. 국민이 편하다면,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당은 국민이 믿을 때까지 신뢰할 때까지 백번이고 천번이고 무릎 꿇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처연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전효숙 파문이 해결됐다고 해서 정국이 일변해서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정국의 키를 쥐고 있는 한나라당이 현 정부의 인사 문제를 끝까지 물고 들어가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나경원(羅卿瑗) 대변인은 "당연지사이고 사필귀정"이라고 전 후보자 지명철회 결정을 평가하면서도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잘못된 인사를 모두 바로 잡아야 한다"며 '+α'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이 표적으로 삼고 있는 '잘못된 인사'는 이재정((李在禎) 통일부장관 후보자,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 정연주 KBS 사장 등 3명이다.

청와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사항이다. 이미 청와대는 송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제출을 국회에 요구했고, 이 후보자에 대해서도 28일께 경과보고서 제출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장관 인사는 국회 동의가 불필요한 사안인 만큼 그대로 밀고나가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의 거부로 사실상 소멸됐던 '여야정 정치협상회의'가 생명력을 얻어 여야간 쟁점을 털어내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가 전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라는 고육책을 쓴 이유중 하나가 '정협'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경색된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정협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의지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나라당의 거듭되는 거부 의사 표명에도 불구, 청와대측이 "대통령께서 진정성을 담아서 제안한 것"이라며 거듭 협상 수용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전효숙 카드철회 이후에도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 원내대표는 "전 후보자 지명철회와 정치협상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고, 나 대변인도 "두번 세번 요청해도 단호히 거절할 것"이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생각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전효숙 파문의 여세를 몰아 대선을 1년여 앞둔 상황에서 정국의 기선을 완전히 제압하겠다는 기세가 읽히고 있다. 내친김에 인사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궁극적으로 사학법 재개정 문제까지도 여권의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물론, 정국이 예상보다 빨리 정상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도 나온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과의 지난 16일 원내대표 회담에서 전 후보자 처리 문제를 29일 이후로 연기하기로 하면서 '국방개혁법안과 예산안의 회기내 처리에 최대한 협의한다'는 합의를 해 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전 후보자 문제가 해결된 만큼 이 약속을 지키라는 여당의 요구에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호영(朱豪英) 원내부대표는 "쟁점법안들이야 여야 간에 협의가 가능한 것 아니냐"며 "다만 여야가 서로 주장하는 법안들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협의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전효숙 지명 철회로 여론이 여권에 일부 동정적으로 변하는 경우와 여야 지도부의 협상력, 다시 말해 정치력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사학법 재개정과 국방.사법개혁법안 빅딜설'이 나돌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한나라당내에는 문제인사의 전면 철회 요구라는 강경 입장이 지배적인 상황이고, 여야간 정치력을 기대하기도 과거의 경험으로 비쳐볼 때 쉽지 않다는 점에서 조기 정국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시기상조라는 관측도 나온다.

청-야 및 여야 관계뿐 아니라 여권 내부도 문제가 심각하다. 청와대가 한마디 협의도 없이 한나라당에 정치협상을 제안한 것을 놓고 '여당 무시'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는 우리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만찬회동 제안도 거부하는 '극약처방'을 한 상태이다.

앞으로 정부가 방향을 정해놓고 하는 당.정 협의는 불참하겠다는 김근태(金槿泰) 의장의 공식 선언까지 나온 마당이다. 당.청 관계의 악화는 향후 정계개편과 맞물리면서 여권의 세력분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모종의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이미 그럴 단계는 지났다"면서 여당과 노 대통령이 되돌릴 수 없는 마이웨이 수순으로 접어들었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한나라당에 양보할 것은 모두 양보하고, 조속히 시급한 민생법안과 예산안을 마무리 지은 뒤 우리는 우리 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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