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다시 뜯어봐도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고상한' 동양철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도올 김용옥(58) 세명대 석좌교수와 대중가수, 그것도 서양 히피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은 가수 한대수(58). 두 사람이 동갑내기라는 점을 제외하면, 선입견 가득한 일반인에게 이들은 한 쌍의 '불협화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세간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화음'을 만들어냈다. 어떤 앙상블보다 절묘하고 독특한 화음을 연출했다. 지난 8일 광주MBC공개홀에서 마련된 공연 '도올·한대수 록 콘서트-행복의 나라로!'에서다.
이 콘서트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두 사람이 한 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공연은 음반으로도 정식 발매된다.
사상 유례없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두 사람을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김용옥 교수 연구실에서 동시에 만났다.
두 사람은 과연 왜 그런 공연을 마련했을까. 어떻게 그 같은 친분이 쌓인 것일까. 또 서로 어떤 점을 공유하고 있을까.
공연과 음반 출시를 둘러싼 궁금증을 풀어본다. 인터뷰에서는 김 교수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으며, 한대수가 그 사이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인연의 시작과 현재-"한대수 노래 정도는 나도 부르겠더라"(김용옥)
한대수는 오랜만에 김 교수를 만났다고 했다. "도올은 요즘 책 쓴다고 바빠서 전화도 통 안 받는다"고 투덜대던 그는 귤 한 상자를 직원에게 건내면서 연구실로 들어섰다. 10일 미국으로 출국하는 한대수는 인터뷰를 핑계 삼아 출국 인사까지 겸하려고 김 교수를 찾았다.
잠시 후 김 교수가 도착했고, 두 사람은 서로 스스럼없이 안부를 물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친분이 무척 두터워보였다. 한두 해 인연은 아닌 듯했다.
둘의 인연은 2003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 일간지의 기자로 활동하던 김 교수는 한대수의 음반 중 '호치민'이라는 곡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인터뷰를 자청했다.
"앨범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참 징그럽게 생겼네'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나는 한대수가 주로 활동하던 1970대에 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한대수라는 가수의 존재를 몰랐어요. 그런데 한국 가수가 호찌민을 찬양한 노래를 부른 데다 헤비메탈 리듬을 배경으로 내레이션하듯 노래하는 형식에 놀랐죠. '이런 것은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나에게 무대에 설 희망을 최초로 줬습니다(웃음). 그렇게 만난 순간 이 사람은 진짜 아티스트라는 것을 알겠더라고요."(김용옥, 이하 김)
한 면을 가득 채운 기사가 나간 후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우정'을 다지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에서 함께 샌드위치를 먹고, 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했죠. 나는 밑바닥 이야기, 도올은 상층부 이야기를 하면서 지냈습니다."(한대수, 이하 한)
◇공연 음반 출시의 계기-"도올이 록스타가 되는 계기죠"(한대수)
2003년 기사를 살펴보면 마지막 부분에 김 교수와 한대수가 "우리 단 둘이서 한번 공연을 해보자" "그래!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라고 문답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합동공연을 염두에 둔 셈이다.
"사실 이번에 음반까지 낼 계획은 없었어요. 나는 공연마다 녹음해 두는데 이번 공연은 정말 잘됐더라고요. 그래서 음반사에 가서 출시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도올이 록스타가 되는 계기죠. 도올은 공연에서 '청춘과 록' '한오백년'을 솔로로 불렀고, '희망가'는 함께 불렀습니다."(한)
"광주MBC에서의 특강 '역사를 말한다'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음반을 나오게 한 1차적인 공로는 광주시민의 열기입니다. 광주 사람들이 한대수를 무척 보고 싶어했어요. 어려웠던 독재시절에 음악이 가졌던 위력이 충분이 되살려졌다는 느낌으로 공연은 이뤄졌습니다."(김)
"실제 공연에 대해서는 3년 전부터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준비과정이 복잡하고 많았죠."(한)
공연은 철학자와 록가수가 어우러졌다는 점과 함께 형식 자체도 화제가 됐다. 김 교수는 공연 도입부에 16분에 걸쳐 한대수의 가족사와 음악세계를 소개했다. 중후반부에는 대중음악, 노무현 정권의 정책 실패 등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도올의 내레이션이 훌륭했어요. 시적인 해설과 역사적인 배경 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감명받았죠."(한)
"우리 공연에서 반성해야 할 점은 토크(talk)가 없다는 점입니다. 콘서트에 단 1분이라도 석학의 말이 들어가면 격이 달라질 수 있어요. 고급스러운 토크 메시지로 콘서트 문화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처럼 대중 콘서트에 지식이 참여하는 형식은 장르화될 것으로 생각해요."(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둘은 결코 다른 세계가 아니다"(김용옥)
김용옥은 고려대 국립대만대, 도쿄대, 하버드대를 거친 당대의 석학이다. 현대 고급문화의 정수를 접한 것.
한대수는 '행복의 나라' '바람과 나' '물 좀 주소' 등으로 이 땅에 포크음악과 전위음악의 씨를 뿌린 선구자다. 하지만 제대로 된 평가와 대접은 받지 못했다.
두 사람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전형'인 셈이다.
"한대수와 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질 높은 언어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비슷해요. 하지만 하나는 딴따라로, 하나는 사유를 다루는 철학으로 나아갔어요. 둘 다 우리 사회 경직성의 희생물이 됐어요. 한대수는 밑으로만 내려가고, 나는 위로 더 빠졌죠. 그러다가 요즘 다시 만난 겁니다. 의미 있는 상징이죠.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는 다른 세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내 쪽에서 해야 더 설득력이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끌어올리려고 내가 직접 밑으로 내려간 겁니다."(김)
"공연 때 도올이 내레이션으로 설명을 하니까 관객도 더욱 잘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음반은 몇 번을 들어도 지루하지가 않아요."(한)
◇음악인으로서 도올 vs 철학자로서 한대수
김용옥은 철학의 세계에서 음악의 세계로 한 발 더 나아갔고, 한대수는 평소 음악 속에 사상과 이념을 녹여냈다. 자연스럽게 질문은 상대의 음악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한대수의 예술세계에는 짙은 도가적 정서가 있습니다. 문명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해방을 구가하죠. 인간을 옥죄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철학입니다. 한대수는 단순한 흉내 차원이 아닌 한국 역사상 진정한 최초의 히피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의 개인사와 음악은 우리 역사에서 단절됐습니다. 우리 역사가 더 키워줬어야 할 인물인데 그렇지 못했습니다."(김)
"헤비메틀 같은 음악을 하려면 목소리가 좋아야 합니다. 필링(feeling)이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도올은 훌륭한 음악가입니다. 필링이 좋아요. 그만큼 음악에 집념이 있다는 말입니다."(한)
그렇다면 김용옥은 과연 어떻게 음악을 접했을까. 음악에 대한 애정은 어떨까.
"재즈 공부를 하려고 아카데미에 1년 등록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했죠. 대중음악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마스터하는 것 못지않은 어려운 공부라고 느꼈어요. 2년 후쯤에는 리사이틀도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싸구려 평범한 나이트클럽에 앉아서 공연 연습을 할 각오가 돼 있어요. 키보드만 누를 수 있어도 권위 있게 보여질 수 있을 겁니다."(김)
끝으로 그는 이제 한층 창조적인 음악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고 역설했다.
"흑인은 아프리카 시나위를 서양음악과 접목시켜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냈어요. 음악이 없었다면 흑인은 인디언 신세가 됐을 겁니다. 미국은 이런 창조적인 음악으로 20세기 대중음악을 주도했어요. 그런데 이제 한계가 왔습니다. 이제는 세계가 미국 문화의 자산을 이용해 어떻게 자기 것을 만드느냐의 경지로 넘어갔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대단한 위치에 있어요. 판소리와 발라드, 판소리와 록은 왜 결합될 수 없나요. 모든 창조적인 것이 21세기 한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그 흐름에 일조를 하겠어요."(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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